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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素那)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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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금천(金川)
생년?(미상)
졸년675(문무왕 15)
시대통일신라
활동분야군인 > 장수
침나(沈那)
출신지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 지금의 稷山)

[상세내용]

소나(素那)
미상∼675년(문무왕 15). 신라 문무왕 때의 장수.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 지금의 稷山) 출신. 침나(沈那)의 아들이다.

백제가 망한 뒤 한주(漢州) 도독(都督) 유공(儒公)의 청으로 문무왕소나를 북쪽 변경의 아달성(阿達城)에 머물며 변경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백제에 이어 고구려가 망하자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복속시키려는 욕망으로 군사를 내어 신라를 침공하는 한편, 말갈족 등 변방민족을 충동하여 자주 신라의 변경을 침입하게 하였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소나는 변경방비의 임무를 띠고 아달성에 머무르게 되었다.

675년(문무왕 15)에 마침 아달성태수 한선(漢宣)이 성의 백성들로 하여금 성밖의 밭에 나가 베〔麻〕씨를 뿌리도록 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탐지한 말갈족들은 백성들이 모두 밭에 나가 성을 비운 사이에 갑자기 성을 습격하여 노략질하였다.

이때 소나가 분격하여 적에게 돌진하니 적은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다만 활을 쏘므로 소나도 활을 쏘며 하루종일 싸웠다. 이 사이 소나의 몸은 화살이 꽂혀 마치 고슴도치같이 되어 마침내 쓰러져 죽었다. 그는 평소에 “장부는 마땅히 전쟁터에서 죽어야 하며 자리에 누워 가족들의 손길 속에서 죽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의 죽음을 전하여 들은 왕은 눈물을 흘리며 충절에 탄복하고 잡찬(迊飡)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집필자]

신동하(申東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