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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金大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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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김대정(金大正)
생년700(효소왕 9)
졸년774(혜공왕 10)
시대통일신라
활동분야정치 > 정치가
김문량(金文亮)

[상세내용]

김대성(金大城)
700년(효소왕 9)∼774년(혜공왕 10). 신라 경덕왕 때의 정치가. 김대정(金大正)이라고도 한다. 부친은 재상을 지낸 김문량(金文亮)이다.

745년(경덕왕 4) 이찬(伊飡)으로 중시가 되었으며, 750년에 물러났다.

그뒤 불국사의 창건공사를 주관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연기설화가 『삼국유사』에 실려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모량리(牟梁里: 浮雲村이라고도 함.)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아주 넓어 성과 같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 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기르기 힘들었으므로 그 어머니가 부자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였는데, 그 집에서 밭 몇 마지기를 줌으로써 생활을 꾸려나갔다.

하루는 점개(漸開)라는 중이 흥륜사(興輪寺)에 육륜회(六輪會)를 베풀고자 부자집에 와서 시주하기를 권하니 베 50필을 시주하였다. 이에 점개가 축원하기를 “불교신자로서 보시를 잘 하시니 천신이 항상 보호하여 하나를 시주하면 만배를 얻어 안락하고 장수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 뛰어들어와서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제가 문간에서 축원하는 스님의 말을 들으니 하나를 시주하면 만배를 얻는다고 하였읍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것을 생각할 때 전생에 착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지금 시주하지 않으면 내세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경작하는 밭을 법회(法會)에 시주하여 후세의 복을 얻음이 어떻겠습니까?” 하자 어머니가 듣고 좋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밭을 점개에게 시주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성이 죽었는데, 이날 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에서 부르짖음이 있기를 “모량리의 대성이가 지금 너의 집에 환생하리라.” 하므로 집안사람이 놀라서 모량리에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과연 하늘에서 부르짖은 때에 대성이가 죽었다. 이로부터 김문량의 부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가 왼손을 꽉 쥐고 펴지 않다가 7일 만에 손을 폈다.

그런데 손안에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를 새긴 금간자(金簡子)가 있기에 이름을 대성이라 하였다.

또한 전세의 어머니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부양하였다. 김대성이 장성하자 사냥을 좋아하여서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마리를 잡고 산밑 마을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말하기를 “네가 나를 죽였으니 나도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하므로 김대성이 겁에 질려 용서하기를 비니 귀신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위하여 절을 지어주겠는가?” 하므로 김대성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꿈을 깨니 온몸에 땀이 흘러 자리를 적셨다.

그뒤로는 일체 사냥을 금하고, 곰을 위하여 사냥하던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그리고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고,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石佛寺: 지금의 石窟庵)를 창건하였다 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이미지]

[집필자]

정중환(丁仲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