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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處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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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처용랑(處容郞)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신라
활동분야관료 > 관리

[상세내용]

처용(處容)
생졸년 미상. 신라 헌강왕 때의 관리. 처용랑(處容郞)이라고도 한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다. 헌강왕개운포(開雲浦: 지금의 울산)에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신하들에게 까닭을 물으니, 일관(日官)이 “이는 동해 용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풀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이에 왕이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령을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그래서 이곳을 ‘개운포’라 하였다.

동해의 용이 기뻐하여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다. 그리고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머물러 있도록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서 역신(疫神)이 흠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몰래 그 집에 가 동침하였다.

이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양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나랏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였다.

이때 처용이 지어 부른 노래를 「처용가(處容歌)」라 하고, 춘 춤을 처용무(處容舞)라 하여 후대까지 전해내려왔다.

한편, 설화에서는 처용동해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당시 울산 지방에 있었던 호족(豪族)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혹은 당시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高麗史
三國遺事所載 處容說話의 一分析(李佑成, 金載元博士回甲紀念論叢, 1969)
處容說話의 一硏究(李龍範, 震檀學報 32, 1969)

[집필자]

이종항(李鍾恒)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