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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공(敏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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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신라
활동분야관료 > 시중

[관련정보]

[상세내용]

민공(敏恭)
생졸년 미상. 신라 헌강왕 때의 시중. 관등은 이찬(伊飡)이었다.

880년(헌강왕 6) 2월 예겸(乂謙)의 후임으로 시중에 임명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해 9월 헌강왕민공 등의 근신(近臣)과 함께 월상루(月上樓)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니 서울의 민가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집집마다 가락이 끊이지 않음을 보고, 서울의 민가가 모두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 대신 숯으로 밥을 지을 정도로 융성하게 된 것은 모두 민공 등이 잘 보좌한 때문이라고 치하하였다고 한다. 헌강왕 때는 신라 하대의 정치적 불안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에 40여 금입택(金入宅)이 존재하였을 정도로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중이었던 민공헌강왕을 잘 보필한 데도 어느 정도 기인한 듯하다.

특히, 민공은 6년6개월 동안 시중직을 역임함으로써 신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시중직에 있었던 인물이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 金入宅考(李基東, 震檀學報 45, 1978)
新羅下代의 執事部(李基白,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집필자]

권덕영(權悳永)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