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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金龍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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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김용수(金龍樹)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신라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왕실 > 왕족
지도부인(知道夫人)
천명부인(天明夫人)

[상세내용]

김용춘(金龍春)
생졸년 미상. 신라시대 왕족. 일명 김용수(金龍樹). 진지왕의 아들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 모친은 지도부인(知道夫人) 박씨이고,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 김씨이다.

아버지 진지왕의 신분은 성골이나, 왕위에 재위한 지 4년 만인 579년에 폐위당하였으며, 김용춘의 아들인 김춘추의 신분은 진골로 되어 있다. 따라서, 김용춘의 신분이 원래 성골이었는지, 아니면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族降)하였는지 그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654년(태종무열왕 1) 4월 아들인 무열왕에 의해 문흥대왕(文興大王)으로 추봉되었는데, 『삼국유사』에는 용춘문흥갈문왕(文興葛文王)이라고 되어 있다.

즉, 대왕은 중국식 추시(追諡)와 비슷한 관념을 지니는 것으로, 갈문왕이 발전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갈문왕은 한 씨족 내지 가계의 우두머리로서, 왕의 즉위초에 그 왕과의 일정한 관계를 기준으로 해서 책봉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신라 중대의 첫 왕인 태종무열왕이 아버지를 대왕으로 추봉하였다는 것은 문흥대왕이 가조적(家祖的)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무열왕의 아버지인 김용춘갈문왕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중국식으로 문흥대왕에 추봉된 것을 계기로 일단 종래의 갈문왕제도가 신라사회에서 중단되었다는 사실은 태종무열왕계 왕권의 전제주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上代王位繼承硏究(李鍾旭, 嶺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0)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李基東, 一潮閣, 1984)
新羅時代의 葛文王(李基白, 歷史學報 58, 1973;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新羅三代考(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1954)

[집필자]

김용선(金龍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