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金閼智)
[상세내용]
김알지(金閼智)
65년(탈해이사금 9)∼미상. 신라인으로 경주김씨의 시조.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이사금 9년에 왕이 금성(金城)서쪽 시림(始林) 속에서 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니, 황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이 궤에서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보고 돌아와 왕께 고하니 왕이 친히 가서 궤를 열어보자 용모가 수려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이를 국호로 삼았다.
탈해왕은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씨로 하였으며, 성장함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알지’라고 이름하였다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도 알지설화가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삼국사기』와 약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은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박‧석 양씨보다 먼저 경주지역에 정착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뒤에 그 비중이 커지게 된 김씨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그들의 조상을 연결하여 이같은 설화를 탄생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알지’라는 명칭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것이 ‘아기’라는 뜻이라고 했으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를 따르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Ar’부족, 즉 ‘금(金)’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알지의 아들은 김세한(金勢漢) 또는 김세한(金熱漢)이며, 그뒤의 계보는 아도(阿都)―수류(首留, 혹은 水留)―욱보(郁甫, 또는 郁部)―구도(俱道, 또는 仇刀)로 이어지며 구도의 아들은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다. 미추이사금은 알지의 7세손이 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이사금 9년에 왕이 금성(金城)서쪽 시림(始林) 속에서 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니, 황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이 궤에서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보고 돌아와 왕께 고하니 왕이 친히 가서 궤를 열어보자 용모가 수려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이를 국호로 삼았다.
탈해왕은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씨로 하였으며, 성장함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알지’라고 이름하였다 한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도 알지설화가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삼국사기』와 약간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은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박‧석 양씨보다 먼저 경주지역에 정착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뒤에 그 비중이 커지게 된 김씨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그들의 조상을 연결하여 이같은 설화를 탄생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알지’라는 명칭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것이 ‘아기’라는 뜻이라고 했으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를 따르기도 했으나, 근래에는 ‘Ar’부족, 즉 ‘금(金)’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알지의 아들은 김세한(金勢漢) 또는 김세한(金熱漢)이며, 그뒤의 계보는 아도(阿都)―수류(首留, 혹은 水留)―욱보(郁甫, 또는 郁部)―구도(俱道, 또는 仇刀)로 이어지며 구도의 아들은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이다. 미추이사금은 알지의 7세손이 된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羅上古世系와 그 紀年(金哲埈, 歷史學報 17‧18合輯, 1962;韓國古代社會硏究, 知識産業社, 1975)
新羅上古世系考(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1954)
三國遺事
新羅上古世系와 그 紀年(金哲埈, 歷史學報 17‧18合輯, 1962;韓國古代社會硏究, 知識産業社, 1975)
新羅上古世系考(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1954)
[집필자]
이형우(李炯佑)
명 : "알지(閼智)"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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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