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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多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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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고구려
활동분야왕실 > 귀족

[상세내용]

다식(多式)
생졸년 미상. 고구려말의 귀족‧부흥운동가.

관계는 소형(小兄)이며 외교활동으로 유명하였다. 고구려가 망하자 670년(문무왕 10) 6월 고구려의 유민은 고구려부흥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때 검모잠(劍牟岑)고구려유민을 모아 궁모성(窮牟城)으로부터 패하(浿河)를 도강하여, 남방으로 진출하여 당나라의 관리와 승 법안(法安)을 죽였다. 그리고 신라에 항부하고자 남하하여 서해의 사야도(史冶島)에 이르러,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안승(安勝)을 만나 한성(漢城)으로 맞아들여 고구려왕으로 받들고, 소형 다식 등을 신라 문무왕에게 파견하여 고구려를 부흥하게 하여 영세에 충성을 다할 번병(藩屛)이 되게 해달라고 교섭하였다.

이에 문무왕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명(冊命)하고 선대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으며, 쌀 2,000석과 갑구마(甲具馬) 1필과 능라(綾羅) 5필, 지세포(指細布) 20필, 면포(綿布) 15필을 하사하여 다식신라 사신 사찬(沙飡) 수미산(須彌山)과 함께 돌아오고, 안승금마저(金馬渚: 지금의 익산)에 봉하게 하였다.

이때 다식고구려 사절이 신라왕에게 올린 죽서에는 “멸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잇는 것은 천하의 공의(公義)이므로 오직 대국에 이를 바랄 따름입니다. 우리나라의 선왕(보장왕)은 왕도를 잃고 멸망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 등은 우리나라의 귀족 안승을 맞아 임금으로 받들어 살았으므로, 원컨대 번병이 되어서 영세로 충성을 다하겠나이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집필자]

문경현(文暻鉉)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