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계왕(責稽王)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C45ACC4C655D0298X0 |
이명(異名) | 청계(靑稽) |
이명(異名) | 책체(責替) |
생년 | ?(미상) |
졸년 | 298(분서왕 1) |
시대 | 백제 |
활동분야 | 왕실 > 왕 |
처 | 보과(寶菓) |
처부 | 대방왕(帶方王) |
[상세내용]
책계왕(責稽王)
미상∼298년(분서왕 1). 백제 제9대왕. 재위 286∼298년. 일명 청계(靑稽) 또는 책체(責替)라고도 한다. 고이왕의 맏아들이며, 왕비는 대방왕(帶方王)의 딸 보과(寶菓)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의지가 굳세었다고 한다.
286년(책계왕 1)에 고구려가 대방을 공격하였을 때, 대방왕이 사위인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군사를 보내어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이 때문에 고구려와의 사이가 나빠져,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아차성(阿且城: 지금의 서울 광장동 아차산성)과 사성(蛇城: 지금의 서울 풍납동토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나 298년 한군(漢軍: 낙랑의 군대)과 맥인(貊人: 동예로 추정됨.)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286년(책계왕 1)에 고구려가 대방을 공격하였을 때, 대방왕이 사위인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군사를 보내어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이 때문에 고구려와의 사이가 나빠져,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아차성(阿且城: 지금의 서울 광장동 아차산성)과 사성(蛇城: 지금의 서울 풍납동토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나 298년 한군(漢軍: 낙랑의 군대)과 맥인(貊人: 동예로 추정됨.)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적병에게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三國遺事
[집필자]
노중국(盧重國)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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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