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鄭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900FFFFB1580X0 |
자(字) | 행지(行之) |
생년 | 1580(선조 13) |
졸년 | 1623(인조 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해주(海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영문(鄭英文) |
증조부 | 정언각(鄭彦慤) |
[상세내용]
정준(鄭遵)
1580년(선조 13)∼1623년(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행지(行之).
정언각(鄭彦慤)의 증손으로, 정영문(鄭英文)의 아들이며, 정조(鄭造)의 동생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광해군 때 다시 설치된 독서당(讀書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서 지평‧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정조(鄭造)와 더불어 1613년 계축옥사 및 폐모론 등에 대북파의 일원으로 가담하여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주동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교리‧이조정랑 등을 거쳐 1621년에는 의주부윤으로 있었고,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총신(寵臣)이었던 죄로 의주에서 주살(誅殺)되었다.
정언각(鄭彦慤)의 증손으로, 정영문(鄭英文)의 아들이며, 정조(鄭造)의 동생이다.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광해군 때 다시 설치된 독서당(讀書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서 지평‧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정조(鄭造)와 더불어 1613년 계축옥사 및 폐모론 등에 대북파의 일원으로 가담하여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주동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교리‧이조정랑 등을 거쳐 1621년에는 의주부윤으로 있었고,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총신(寵臣)이었던 죄로 의주에서 주살(誅殺)되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仁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이범직(李範稷)
성명 : "정준(鄭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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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