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림(宋世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A1C138B9BCB1479X0 |
자(字) | 헌중(獻仲) |
호(號) | 취은(醉隱) |
호(號) | 고은(孤隱) |
호(號) | 고송(孤松) |
호(號) | 눌암(訥庵) |
생년 | 1479(성종 10)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여산(礪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송연손(宋然孫) |
저서 | 『어면순(禦眠楯)』 |
[관련정보]
[상세내용]
송세림(宋世琳)
1479년(성종 10)∼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헌중(獻仲), 호는 취은(醉隱)‧고은(孤隱)‧고송(孤松)‧눌암(訥庵). 군수 송연손(宋然孫)의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진사가 되고, 1502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상을 당하여 초상 중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벼슬에 오르지 않아 갑자사화를 면하였다. 이 때문에 스스로 ‘취은’이라 호하였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16년(중종 11) 능성현령(綾城縣令)으로 재직중 방납(防納)폐단의 제거, 책 인쇄로 인한 과중된 잡세(雜稅)폐지, 군액(軍額)충당을 위한 중〔僧〕의 추쇄(推刷)와 절〔寺〕의 소각, 우전입마(郵傳立馬)의 폐에 대한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 지방행정제도 개혁안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이 상소로 중종으로부터 포상을 받고 벼슬도 가자(加資)되었다. 뒤에 교리에 이르러 병으로 사퇴하였다.
당대 문명을 떨쳤고 그림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다. 태인의 무성서원(武成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어면순(禦眠楯)』이 있다.
1498년(연산군 4) 진사가 되고, 1502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상을 당하여 초상 중 너무 슬퍼한 나머지 병을 얻어 벼슬에 오르지 않아 갑자사화를 면하였다. 이 때문에 스스로 ‘취은’이라 호하였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16년(중종 11) 능성현령(綾城縣令)으로 재직중 방납(防納)폐단의 제거, 책 인쇄로 인한 과중된 잡세(雜稅)폐지, 군액(軍額)충당을 위한 중〔僧〕의 추쇄(推刷)와 절〔寺〕의 소각, 우전입마(郵傳立馬)의 폐에 대한 개선 등을 내용으로 한 지방행정제도 개혁안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이 상소로 중종으로부터 포상을 받고 벼슬도 가자(加資)되었다. 뒤에 교리에 이르러 병으로 사퇴하였다.
당대 문명을 떨쳤고 그림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다. 태인의 무성서원(武成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어면순(禦眠楯)』이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大東野乘
國朝榜目
大東野乘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자 : "헌중(獻仲)"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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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