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징(宋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1A1C9D5FFFFB1564X0 |
자(字) | 신지(信之) |
호(號) | 율옹(栗翁) |
생년 | 1564(명종 19) |
졸년 | 1643(인조 2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신평(新平)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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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 송문절(宋文節) |
저서 | 『율옹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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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송징(宋徵)
1564년(명종 19)∼1643년(인조 21).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신지(信之), 호는 율옹(栗翁).
부친은 증공조참의 송문절(宋文節)이다. 송정순(宋庭筍)의 문인이며, 정철(鄭澈)과 가까이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91년(선조 24) 정철이 파출(罷黜)되었을 때 신구소(伸救疏)를 올렸다가 연좌되어 10년 정거령(停擧令)을 받았다.
그는 형벌 및 부세(賦稅)를 경감할 것과 문교진흥에 힘쓸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고용후(高用厚)가 무고를 당하여 계옥되었을 때에는 신무소(伸誣疏)를 올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순국한 고경명(高敬命) 3부자의 충효를 들어 관유(寬宥)를 청하였고, 1612년에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성균관유생으로 항소를 올렸다.
담양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율옹유고』가 있다.
부친은 증공조참의 송문절(宋文節)이다. 송정순(宋庭筍)의 문인이며, 정철(鄭澈)과 가까이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91년(선조 24) 정철이 파출(罷黜)되었을 때 신구소(伸救疏)를 올렸다가 연좌되어 10년 정거령(停擧令)을 받았다.
그는 형벌 및 부세(賦稅)를 경감할 것과 문교진흥에 힘쓸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정책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고용후(高用厚)가 무고를 당하여 계옥되었을 때에는 신무소(伸誣疏)를 올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순국한 고경명(高敬命) 3부자의 충효를 들어 관유(寬宥)를 청하였고, 1612년에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성균관유생으로 항소를 올렸다.
담양의 구산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율옹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栗翁遺稿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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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