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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유(金是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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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유(子柔)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김시유(金是瑜)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유(子柔). 인품이 의젓하고 분명하였으며, 특히 중국어에 능통하여 외교적 활동이 뛰어나 1721년(경종 1)에는 영조를 세제(世弟)로 삼는 일을 주청하였다.

특히, 중국 국왕들과 개별적 친분이 있어 국가의 현안문제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었다.

1726년(영조 2) 변무사(辨誣使)를 따라 중국에 갔는데, 그것은 인조『명사(明史)』에 잘못 기록되어 그 전에 여러 번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시정되지 않아 다시 고치려 한 것인데, 이때 최선을 다한 결과 수정할 수 있었다.

또, 1730년에는 『명사』 가운데 태조가 정권을 잡을 당시의 여러 사실들이 잘못 기재되어 이를 고치려고 다시 사신을 보내면서 영조는 말하기를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바르게 고치고 귀국하라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으나 그는 중국에 건너가 왕과 조정 대신들을 차례로 만나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바르게 수정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영조는 그 공을 치하하여 노비와 전답을 지급했으며, 관계가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으나 겸손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通文館志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