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金鶴洙)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559C218B1849X0 |
생년 | 1849(헌종 15)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영수(金永秀) |
출신지 | 경기도 여주 |

[상세내용]
김학수(金鶴洙)
1849년(헌종 15)∼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경기도 여주 출신. 은산현감(殷山縣監) 김영수(金永秀)의 아들이다.
188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뒤, 1887년에는 다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되었다.
그뒤 설서(說書)‧응교(應敎)‧필선(弼善)‧이조정랑‧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이조참판 등을 두루 거친 뒤, 1897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그러나 1901년 군인들에게 단발(斷髮)의 조칙이 내려지자 궁내부특진관으로 있으면서 그 조칙의 철회를 주장하다가 탄핵을 받아 파면,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뒤 경상남도관찰사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88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뒤, 1887년에는 다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되었다.
그뒤 설서(說書)‧응교(應敎)‧필선(弼善)‧이조정랑‧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이조참판 등을 두루 거친 뒤, 1897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그러나 1901년 군인들에게 단발(斷髮)의 조칙이 내려지자 궁내부특진관으로 있으면서 그 조칙의 철회를 주장하다가 탄핵을 받아 파면,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그뒤 경상남도관찰사와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박민영(朴敏泳)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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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