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래(宋祥來)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1A1C0C1B798B1773X0 |
| 자(字) | 원복(元復) |
| 호(號) | 소산(蘇山) |
| 생년 | 1773(영조 49)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후기 |
| 본관 | 여산(礪山) |
| 활동분야 | 예술‧체육 > 화가 |

| 부 | 송문록(宋文祿) |

[관련정보]
[상세내용]
송상래(宋祥來)
1773년(영조 49)∼미상.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복(元復), 호는 소산(蘇山). 송문록(宋文祿)의 아들이다.
1827년(순조 27) 문과 춘당대시(春塘臺試)에 합격하였으며, 1841년(헌종 7) 사헌부대사헌에서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잠영보(簪纓譜)』에 의하면 “묵죽(墨竹)을 잘 그렸고 겸하여 글씨를 잘 썼다.”고 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송주헌(宋柱獻)도 묵죽에 능하였다고 한다.
그의 대나무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뻣뻣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며 서 있는 죽간(竹竿)들이 더욱 그러한 느낌을 자아낸다. 곧고 예리하게 처리된 개자(介字)모양의 댓잎들은 특히 잎새 하나하나에서 짙고 옅은 먹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서예적이기보다 회화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와 교유관계를 맺었던 신위(申緯)의 묵죽보다도,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과 더불어 묵죽화에서 병칭되고 있는 유덕장(柳德章)의 대나무 그림과 상통되는 바 크다.
대표작으로 「묵죽도」 연폭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있으며, 이밖에도 그의 묵죽들이 고려대학교와 간송미술관 등에 여러 점 소장되어 있다.
1827년(순조 27) 문과 춘당대시(春塘臺試)에 합격하였으며, 1841년(헌종 7) 사헌부대사헌에서 사간원대사간이 되었다.
『잠영보(簪纓譜)』에 의하면 “묵죽(墨竹)을 잘 그렸고 겸하여 글씨를 잘 썼다.”고 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송주헌(宋柱獻)도 묵죽에 능하였다고 한다.
그의 대나무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뻣뻣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며 서 있는 죽간(竹竿)들이 더욱 그러한 느낌을 자아낸다. 곧고 예리하게 처리된 개자(介字)모양의 댓잎들은 특히 잎새 하나하나에서 짙고 옅은 먹의 변화를 보이고 있어 서예적이기보다 회화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와 교유관계를 맺었던 신위(申緯)의 묵죽보다도,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과 더불어 묵죽화에서 병칭되고 있는 유덕장(柳德章)의 대나무 그림과 상통되는 바 크다.
대표작으로 「묵죽도」 연폭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있으며, 이밖에도 그의 묵죽들이 고려대학교와 간송미술관 등에 여러 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韓國繪畵大觀(劉復烈, 文敎院, 1969)
槿域書畵徵(吳世昌, 啓明俱樂部, 1928)
韓國繪畵大觀(劉復烈, 文敎院, 1969)
[집필자]
홍선표(洪善杓)
| 대표명 | 송상래(宋祥來) |
| 성명 | 송상래(宋祥來) |
성명 : "송상래(宋祥來)"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