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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운(金聖運)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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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계보(啓甫)
호(號)곤재(困齋)
생년1681(숙종 7)
졸년1747(영조 23)
시대조선중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명석(金明錫)
조부김진수(金震粹)
증조부김경여(金慶餘)
처부심징(沈澂)
외조부박시위(朴時瑋)
묘소연기군(燕岐郡) 동면(東面) 앵암리

[상세내용]

김성운(金聖運)
1681년(숙종 7)∼1747년(영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보(啓甫), 호는 곤재(困齋).

문정공(文貞公) 송애(松崖) 김경여(金慶餘)의 증손으로, 조부는 안음현감(安陰縣監)을 지내고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된 김진수(金震粹)이다. 부친은 조부와 마찬가지로 현감을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된 김명석(金明錫)이다. 외조부는 박시위(朴時瑋)이고, 처부는 심징(沈澂)이다.

일찍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중부(仲父) 김창석(金昌錫)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713년(숙종 39) 계사증광사마시(癸巳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여 정릉참봉(貞陵參奉)을 거쳐 사포서봉사(司圃署奉事)공조정랑(工曹正郞)은진현감(恩津縣監) 등을 지냈다.

1733년(영조 9) 계축식년문과(癸丑式年文科) 갑과(甲科) 3등으로 급제하여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 경주부윤(慶州府尹), 강원도(江原道)‧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등을 지냈다.

1747년(영조 23) 67세의 나이로 회덕현(懷德縣)에서 사망하여, 연기군(燕岐郡) 동면(東面) 앵암리 김경여의 묘역에 묻혔다.

[참고문헌]

한밭人物誌
慶州金氏世譜
續大德郡誌

[집필자]

고윤수
대표명김성운(金聖運)
성명김성운(金聖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