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南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B0A8C8FCFFFFU9999X0 |
자(字) | 계응(季應) |
호(號) | 선은(仙隱) |
생년 | ?(미상)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고성(固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남계신(南繼身) |

[관련정보]
[상세내용]
남주(南趎)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계응(季應), 호는 서계(西溪)‧선은(仙隱).
부친은 남계신(南繼身)이다.
1514년(중종 9) 진사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가 되었으나 전라도 곡성에 살 때 현감의 과실을 관찰사에 고발한 것이 부민고소죄(部民告訴罪)에 해당되어 1516년 삭직되고, 이듬해 평안도 의주로 유배되었다.
그뒤 성균관전적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으며,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趙光祖)일파로 몰려 남곤(南袞)에 의해 추방되었고, 1522년 전라도 동복현감 재직중 아랫사람들과의 불화로 해임되었다.
남긴 시(詩) 중에는 남곤을 비꼬아 지은 「촉영부(燭影賦)」가 유명하다.
부친은 남계신(南繼身)이다.
1514년(중종 9) 진사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가 되었으나 전라도 곡성에 살 때 현감의 과실을 관찰사에 고발한 것이 부민고소죄(部民告訴罪)에 해당되어 1516년 삭직되고, 이듬해 평안도 의주로 유배되었다.
그뒤 성균관전적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으며,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趙光祖)일파로 몰려 남곤(南袞)에 의해 추방되었고, 1522년 전라도 동복현감 재직중 아랫사람들과의 불화로 해임되었다.
남긴 시(詩) 중에는 남곤을 비꼬아 지은 「촉영부(燭影賦)」가 유명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國朝人物志
燃藜室記述
[집필자]
권인혁(權仁赫)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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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