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윤(金友尹)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E40C6B0C724D1597X0 |
| 자(字) | 지임(之任) |
| 호(號) | 용만(龍灣) |
| 생년 | ?(미상) |
| 졸년 | 1597(선조 30)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영광(靈光)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김효검(金孝儉) |

[상세내용]
김우윤(金友尹)
미상∼1597년(선조 30).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자는 지임(之任), 호는 용만(龍灣). 본관은 영광(靈光).
김효검(金孝儉)의 아들이다.
1572년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좌랑에 올랐으나 어떤 일에 연루되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뒤 세상의 일을 잊고 독서에만 열중하여 당송팔대가의 문집이나 중국의 역대사서를 섭렵하였으며,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면학에만 힘써 저서 30여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적병이 쳐들어와 어머니가 적에게 잡히자 어머니를 구하려다 함께 피살되었다. 생전에 노(奴) 정세(正世)가 영광에 거주하면서 강상(綱常)의 죄를 범했으나 이를 비호하여 해당 지방관‧향소(鄕所)‧색리(色吏) 등이 모두 처벌받았고 자신도 탄핵받았다.
1572년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좌랑에 올랐으나 어떤 일에 연루되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뒤 세상의 일을 잊고 독서에만 열중하여 당송팔대가의 문집이나 중국의 역대사서를 섭렵하였으며,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면학에만 힘써 저서 30여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적병이 쳐들어와 어머니가 적에게 잡히자 어머니를 구하려다 함께 피살되었다. 생전에 노(奴) 정세(正世)가 영광에 거주하면서 강상(綱常)의 죄를 범했으나 이를 비호하여 해당 지방관‧향소(鄕所)‧색리(色吏) 등이 모두 처벌받았고 자신도 탄핵받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 대표명 | 김우윤(金友尹) |
| 성명 | 김우윤(金友尹) |
성명 : "김우윤(金友尹)"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