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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삼(李日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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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진여(晉如)
호(號)성오(省吾)
생년1626(인조 4)
졸년1700(숙종 26)
시대조선중기
본관서천(舒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복형(李復亨)
출신지홍산(鴻山)

[상세내용]

이일삼(李日三)
1626년(인조 4)∼1700년(숙종 26).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진여(晉如), 호는 성오(省吾). 본관은 서천(舒川). 홍산(鴻山) 출신.

진사 이복형(李復亨)의 아들이다.

1651년(효종 2)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교서로 등용되었다. 이어서 전적을 거쳐 감찰이 되었다.

1658년 호조좌랑춘추관기주관을 역임하고 예조정랑직강을 지냈다.

1663년(현종 4) 예조참의를 지낸 뒤 외직으로 나가 금교영서양재찰방을 지내고, 이어서 음성창평연산 등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특히, 금교찰방을 10년 동안 두번이나 지냈는데 근검한 생활이 모범이 되어 거처하던 공관을 현도(玄都)라고 불렀다. 역마의 관리를 잘 하여 폐사되는 일이 없었고, 역리의 기강을 확립하여 군령의 전달에 침체되는 일이 없었다. 군수로 있을 때에는 청렴과 결백으로 군민을 다스렸기 때문에 창평군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선정을 기렸다.

1678년(숙종 4) 사예로 승차되고, 이어서 승문원판교예빈시정을 지냈다. 춘추관편수관이 되어서는 『현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조정의 여러 곳의 청환을 지냈으나 생활이 청한하여 모옥은 바람과 비를 가리지 못하였고, 집에 돌아와서는 채식만 하였다.

글씨를 잘 썼는데, 대보단(大報壇)에 남은 금석문자는 그의 글씨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