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열(吳命說)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24BA85C5F4B1621X0 |
자(字) | 용여(用汝) |
호(號) | 조은(釣隱) |
생년 | 1621(광해군 13) |
졸년 | 1698(숙종 2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해주(海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오치순(吳致舜) |
외조부 | 정척(鄭惕) |

[상세내용]
오명열(吳命說)
1621년(광해군 13)∼1698년(숙종 2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용여(用汝), 호는 조은(釣隱).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오치순(吳致舜)이며, 모친은 학생 정척(鄭惕)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오수찰방(獒樹察訪)‧감찰‧예조정랑‧강진현감(康津縣監)‧봉상시첨정‧부안현감‧봉상시부정자(奉常寺副正字)‧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영광의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와 ‘임계조은(臨溪釣隱)’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은퇴한 뒤에도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성품은 곧고 담론을 좋아하였다.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오치순(吳致舜)이며, 모친은 학생 정척(鄭惕)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후 오수찰방(獒樹察訪)‧감찰‧예조정랑‧강진현감(康津縣監)‧봉상시첨정‧부안현감‧봉상시부정자(奉常寺副正字)‧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영광의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와 ‘임계조은(臨溪釣隱)’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은퇴한 뒤에도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나가지 않았다.
성품은 곧고 담론을 좋아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人物考
[집필자]
김용곤(金鎔坤)
대표명 | 오명열(吳命說) |
성명 | 오명열(吳命說) |
성명 : "오명열(吳命說)"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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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