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귀(郭聖龜)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ACFDC131ADC0B1606X0 |
| 자(字) | 문징(文徵) |
| 생년 | 1606(선조 39) |
| 졸년 | 1668(현종 9)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해미(海美) |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 부 | 곽치요(郭致堯) |
| 저서 | 『현주세고(玄洲世稿)』 |

[관련정보]
[상세내용]
곽성귀(郭聖龜)
1606년(선조 39)∼1668년(현종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문징(文徵).
부친은 곽치요(郭致堯)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된 뒤, 1631년(인조 9) 태학시취(太學試取)에서 2등을 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은전을 입었으며, 같은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0년 지평이 되고, 1646년 장령에 올랐으며, 1665년(현종 6)까지 장령에 10여 차례 임명되었다. 정언을 거쳐 1650년(효종 1) 필선이 됨으로써 뒤의 현종을 보도하였다.
1655년 이후 1667년까지 헌납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문집으로 『현주세고(玄洲世稿)』 2권 1책이 전한다.
부친은 곽치요(郭致堯)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된 뒤, 1631년(인조 9) 태학시취(太學試取)에서 2등을 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은전을 입었으며, 같은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0년 지평이 되고, 1646년 장령에 올랐으며, 1665년(현종 6)까지 장령에 10여 차례 임명되었다. 정언을 거쳐 1650년(효종 1) 필선이 됨으로써 뒤의 현종을 보도하였다.
1655년 이후 1667년까지 헌납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문집으로 『현주세고(玄洲世稿)』 2권 1책이 전한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文科榜目
孝宗實錄
顯宗實錄
文科榜目
[집필자]
오수창(吳洙彰)
| 대표명 | 곽성귀(郭聖龜) |
| 성명 | 곽용구(郭龍龜) |
성명 : "곽용구(郭龍龜)"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