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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경(崔恒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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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덕구(德久)
호(號)죽헌(竹軒)
생년1560(명종 15)
졸년1638(인조 16)
시대조선중기
본관영천(永川)
활동분야기타 > 처사
최정(崔淨)
조부최사철(崔師哲)
출생지경기도 고양(高陽)

[상세내용]

최항경(崔恒慶)
1560년(명종 15)∼1638년(인조 16).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덕구(德久), 호는 죽헌(竹軒).

조부는 장령(掌令) 최사철(崔師哲)이고, 부친은 성균진사(成均進士) 최정(崔淨)이다. 경기도 고양(高陽)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 최정(崔淨)성주(星州)에 성묘차 갔다 객사하자, 성주(星州)로 내려가 시묘를 하였다. 이후 벼슬에 뜻이 없어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권유에 의해 성주(星州)에 머무르며, 정구(鄭逑)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605년(선조 38)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3등 4위로 합격했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었다. 오암정사(鰲巖精舍)를 짓고 위기지학(爲己之學)과 궁행실천(躬行實踐)에 힘썼으며, 이때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자경잠(自警箴)」을 지었다.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사망하자, 두 아들과 함께 친히 염빈을 하는 등 마치 친상을 당한 것 같이 하였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집을 간행하는데 앞장서서 교감을 하였고, 또 회연서원(檜淵書院)에 봉향하는데도 적극 나섰다. 임진왜란 때 비록 늙은 어머니를 모시느라 직접 싸움터엔 나가진 못하였으나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초유격문(招諭檄文)에 감읍하여 지은 시가 있다. 병자호란 때는 두 아들을 고령(高靈) 창의진(倡義陣)에 내보냈으나, 왕이 이미 항복하였다는 소식에 분격하는 원한시를 지었다. 1678년(숙종 4)에 통훈대부(通訓大夫) 제용감 정(濟用監正)에 증직되었고, 1735년(영조 11) 두 아들 최은(崔𨏈), 최인(崔轔)과 함께 오암서원(鰲巖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성주자치신문(http://cafe.naver.com)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