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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李貞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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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정(子正)
호(號)옥계(玉溪)
생년1556(명종 11)
졸년1638(인조 16)
시대조선중기
본관용인(龍仁)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향성(李享成)
공신호청난공신(淸難功臣)

[상세내용]

이정민(李貞敏)
1556년(명종 11)∼1638년(인조 1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자정(子正), 호는 옥계(玉溪).

홍산현감 이향성(李享成)의 아들이다.

젊어서 박지화(朴枝華)에게 배웠고, 또한 이이(李珥)를 스승으로 섬겼다. 글솜씨로 이름이 있었는데 1590년(선조 23) 소과(小科)에 합격하였고, 1594년 이몽학(李夢鶴)의 난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홍주목사 홍가신(洪可臣)을 도와 난을 진압하는 데 힘쓴 탓에 뒤에 청난공신(淸難功臣)에 녹훈되기도 하였다.

의금부도사감찰 등을 역임하였고, 1619년(광해군 11) 당진현감 재직시 공홍도순검사(公洪道巡檢使) 권반(權盼)에 의하여 탐오수령으로 탄핵받으면서 관력을 마치게 되었다.

그가 거처하던 세심대(洗心臺)는 경치 좋기로 도성 내에서도 제일이었다 하는데, 광해군이 빼앗고 대신 벼슬을 주었으나 그는 이를 피하여 홍주 봉서산(鳳棲山) 아래로 돌아갔다.

만년에는 옥계(玉溪)에 복거하고 이를 호로 삼았다.

날마다 일기를 썼고 이를 『파안록(破顔錄)』이라 하였는데 시사문제를 꺼리지 않고 직필하였으니 사람들이 일컬어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國朝人物考

[집필자]

구완회(具琓會)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