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李稔)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C774C784FFFFB1548X0 |
| 자(字) | 여실(汝實) |
| 호(號) | 남강(南江) |
| 생년 | 1548(명종 3) |
| 졸년 | 1624(인조 2)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한산(韓山)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 부 | 이누(李耨) |
| 생부 | 이우(李耦) |

[상세내용]
이임(李稔)
1548년(명종 3)∼1624년(인조 2).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실(汝實), 호는 남강(南江).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8세손이다. 부친은 도사(都事) 이누(李耨)이고, 생부는 만호(萬戶) 이우(李耦)이다. 8살 때(7살로 기록된 자료도 있음) 부모가 병이 들어 30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었으나 게으른 기색이 없이 효성을 다하였고, 거상(居喪)에 임해서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의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진사시에 합격한 다음 해에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이 발발하자 어성(漁城) 신담(申湛: 1519∼1595)과 함께 의병(義兵)을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8세손이다. 부친은 도사(都事) 이누(李耨)이고, 생부는 만호(萬戶) 이우(李耦)이다. 8살 때(7살로 기록된 자료도 있음) 부모가 병이 들어 30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었으나 게으른 기색이 없이 효성을 다하였고, 거상(居喪)에 임해서도 정성을 다하였다. 그의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진사시에 합격한 다음 해에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이 발발하자 어성(漁城) 신담(申湛: 1519∼1595)과 함께 의병(義兵)을 조직하여 활약하였다.
[참고문헌]
紀年便攷
朝鮮人名辭書
姓號譜彙
朝鮮人名辭書
姓號譜彙
[집필자]
여선자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