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문(權斗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D8CB450BB38B1543X0 |
자(字) | 경앙(景仰) |
호(號) | 남천(南川) |
생년 | 1543(중종 38) |
졸년 | 1617(광해군 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권유년(權有年) |
출신지 | 영주 |
저서 | 『남천집』 |

[상세내용]
권두문(權斗文)
1543년(중종 38)∼1617년(광해군 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앙(景仰), 호는 남천(南川). 영주 출신. 부친은 장악원주부 권유년(權有年)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다.
1572년(선조 5)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에 임명된 뒤 검열 등을 거쳐 1586년 형조정랑‧청도군수 등을 지냈다.
1592년 창평군수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권주(權𪐴)와 함께 적에게 잡히게 되었다. 적 가운데 있으면서 적의 정세를 세밀히 탐지해 관군에게 알렸는데, 이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 『호구일록(虎口日錄)』이다. 원주에 이르렀을 때 깊은 밤을 이용하여 아들과 함께 탈출하였다.
이듬해 행재소에 이르러 봉상시주부가 되었고, 환도 후 군자시첨정(軍資寺僉正)을 거쳐 예천‧진산‧영천‧금산 등의 수령이 되었다.
1602년에 사섬시정을 거쳐 간성(杆城)의 수령을 지내고 내자시정‧통례원정을 역임하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많은 서적을 수장하였으며 여러 책을 교수(校讐)하고 주석을 달았다.
저서에는 『남천집』이 있다.
1572년(선조 5)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에 임명된 뒤 검열 등을 거쳐 1586년 형조정랑‧청도군수 등을 지냈다.
1592년 창평군수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권주(權𪐴)와 함께 적에게 잡히게 되었다. 적 가운데 있으면서 적의 정세를 세밀히 탐지해 관군에게 알렸는데, 이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 『호구일록(虎口日錄)』이다. 원주에 이르렀을 때 깊은 밤을 이용하여 아들과 함께 탈출하였다.
이듬해 행재소에 이르러 봉상시주부가 되었고, 환도 후 군자시첨정(軍資寺僉正)을 거쳐 예천‧진산‧영천‧금산 등의 수령이 되었다.
1602년에 사섬시정을 거쳐 간성(杆城)의 수령을 지내고 내자시정‧통례원정을 역임하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여 많은 서적을 수장하였으며 여러 책을 교수(校讐)하고 주석을 달았다.
저서에는 『남천집』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명 : "두문(斗文)"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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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