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이(宋師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A1C0ACC774B1520X0 |
자(字) | 경숙(敬淑) |
호(號) | 신연(新淵) |
생년 | 1520(중종 15) |
졸년 | 1592(선조 25)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야로(冶爐)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상세내용]
송사이(宋師頤)
1520년(중종 15)∼1592년(선조 25). 조선 전기의 유학자. 본관은 야로(冶爐). 자는 경숙(敬淑), 호는 신연(新淵).
야성군(冶城君) 송길창(宋吉昌)의 후손이다.
성주에 거주하였으며,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이후 정구(鄭逑)‧김우옹(金宇顒)‧최영경(崔永慶)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그는 평소 조행(操行)이 견고하고 온의(溫毅)한 태도를 지녀 조식(曺植)이 그의 집을 자주 찾아가 고금의 일을 토론하였다 하며, 정구도 그를 엄사(嚴師)와 같이 대하며 함께 의리를 강구(講究)하면서 동향의 선비들과 월강(月講)의 계(契)를 맺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주의 신연서원(新淵書院)에 제향되었다.
야성군(冶城君) 송길창(宋吉昌)의 후손이다.
성주에 거주하였으며, 1570년(선조 3) 생원시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이후 정구(鄭逑)‧김우옹(金宇顒)‧최영경(崔永慶)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그는 평소 조행(操行)이 견고하고 온의(溫毅)한 태도를 지녀 조식(曺植)이 그의 집을 자주 찾아가 고금의 일을 토론하였다 하며, 정구도 그를 엄사(嚴師)와 같이 대하며 함께 의리를 강구(講究)하면서 동향의 선비들과 월강(月講)의 계(契)를 맺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주의 신연서원(新淵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燃藜室記述
嶺南人物考
星州邑誌
嶺南人物考
星州邑誌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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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