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波路)
[상세내용]
파로(波路)
생졸년 미상. 신라 소지마립간 때의 지방 세력가. 날이군(捺已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사람이다.
500년(소지마립간 22) 9월에 왕이 날이군에 행행(行幸)하였을 때, 딸 벽화(碧花)를 몰래 바쳤다.
당시 나이가 16세로 대단한 미인인 벽화를 비단과 자수로 옷을 입혀 수레에 태워 아름다운 비단으로 덮어 왕에게 바치자, 왕은 음식인 줄 알고 열어 보았더니 아름다운 여자이므로 괴이하게 여겨 받지 않았다.
그러나 환궁한 뒤에 연모하기를 마지 않은 왕은 미행을 하여 그의 딸과 사랑을 하였고, 결국에는 비밀히 맞아다가 별실에 두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는 비록 날이군의 유력자이기는 하지만 당시 신라사회내에서의 위치는 높지 못하여 그의 딸은 정식 왕비나 후비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그래서 그녀가 낳은 자식 또한 인정받지 못하여, 소지마립간이 죽을 때 다른 아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아마 이는 당시 지방의 세력자가 중앙으로의 진출을 기도한 하나의 좋은 예인 것 같다.
500년(소지마립간 22) 9월에 왕이 날이군에 행행(行幸)하였을 때, 딸 벽화(碧花)를 몰래 바쳤다.
당시 나이가 16세로 대단한 미인인 벽화를 비단과 자수로 옷을 입혀 수레에 태워 아름다운 비단으로 덮어 왕에게 바치자, 왕은 음식인 줄 알고 열어 보았더니 아름다운 여자이므로 괴이하게 여겨 받지 않았다.
그러나 환궁한 뒤에 연모하기를 마지 않은 왕은 미행을 하여 그의 딸과 사랑을 하였고, 결국에는 비밀히 맞아다가 별실에 두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그는 비록 날이군의 유력자이기는 하지만 당시 신라사회내에서의 위치는 높지 못하여 그의 딸은 정식 왕비나 후비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그래서 그녀가 낳은 자식 또한 인정받지 못하여, 소지마립간이 죽을 때 다른 아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아마 이는 당시 지방의 세력자가 중앙으로의 진출을 기도한 하나의 좋은 예인 것 같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집필자]
문경현(文暻鉉)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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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