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현(太賢)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D0DCD604FFFFU9999X0 |
| 이명(異名) | 대현(大賢) |
| 이명(異名) | 청구사문(靑丘沙門)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신라 |
| 활동분야 | 종교 > 불교인 |


[상세내용]
태현(太賢)
생졸년 미상.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대현(大賢)이라고도 하며, 청구사문(靑丘沙門)이라고도 불리었다.
전기(傳記)는 따로 전하는 것이 없고, 여러가지 문헌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범망경고적초(梵網經古迹抄)』에는 태현이 “처음에 화엄(華嚴)을 익혔고 뒤에는 법상(法相)에 들어갔다.”고 하였고, 『비망초(備忘抄)』에는 “대현은 휘(諱)로서 혹은 태현(太賢)이라고 한다. 그 덕행을 숨기는 고로 승전(僧傳)에는 보이지 않는다.
혹은 말하기를 현장(玄奘)의 제자 원측(圓測), 원측의 제자 도증(道證), 도증의 제자 태현이라고도 한다.”하였다.
또, 『촬요계몽(撮要啓蒙)』에서는 “본사(本師)의 작품을 통틀어 말하면 2부(部)가 있으니 하나는 소달람장(素怛覽藏, 經藏) 고적기(古迹記)요, 또 하나는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論藏)고적기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간략하지만 태현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서술된 문헌은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의 현유가해화엄조(賢瑜伽海華嚴條)에 의하면, 그는 유가종(瑜伽宗)의 개산조로서 경주 남산의 용장사(茸長寺)에 거주하였다. 용장사에는 돌로 만든 미륵의 장륙불(丈六佛)이 있었으며, 그가 그 주위를 돌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또 지혜와 언변이 정민(精敏)하였고 판단이 분명하였다.
특히, 법상종(法相宗)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후학들이 모두 그의 가르침을 따랐고 중국의 학자들도 그의 저서를 얻어 안목으로 삼았다.
753년(경덕왕 12) 여름에 가뭄이 심하자 왕은 그를 내전으로 청하여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하여 감우(甘雨)를 빌게 하였다.
어느날 재식(齋食)할 때 바루(鉢盂)를 펴고 얼마동안 있었으나 정수(淨水)를 더디게 올리므로 감리(監吏)가 그 이유를 힐문하니, 공자(供者)가 “궁정(宮井)이 말라 멀리서 물을 길어오는 까닭에 이같이 늦었다.”고 하므로, 대현이 이것을 듣고 낮 강경(講經)을 할 때 향로를 받들고 잠자코 있자 얼마 안 있어 우물물이 7장 가량이나 치솟았다.
궁중이 모두 놀라 그 우물을 금광정(金光井)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모든 저술들은 자기 이전의 여러 스승들의 해석에 순응하여 풀이할 뿐, 사견으로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온건한 학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그를 가리켜 ‘유가종의 개조 대덕’이라 한 만큼 그가 신라 유식종(唯識宗)의 종조(宗祖)임이 분명하며, 중심사상은 유식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저서를 통하여 볼 때 화엄(華嚴)‧열반(涅槃)‧반야(般若)‧법화(法華)‧정토교(淨土敎)‧미륵신앙(彌勒信仰)‧보살계사상(菩薩戒思想) 등에 두루 통하고 있다.
그러나 논부(論部)에 관한 저술에서는 유식계통에 관한 것이 11종이나 된다. 다만 유식학에 관한 현존저술이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 8권뿐이어서 그의 독특한 유식사상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 『성유식론학기』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의견은 『우성식론』을, ① 종(宗)을 낮추어서 체(體)를 나타내는 문, ② 제목을 분별하는 문, ③ 문의(文義)를 해석하는 문의 3문으로 나누어 해석한 점이다.
그리고 태현 자신의 유식관으로는 “호법(護法)이 진술한 바의 유식중도(唯識中道)와 경계(境界)‧행(行)‧과(果) 셋으로써 이 논의 종(宗)을 삼는다.”고 한 간단한 문구 중에 나타나 있을 뿐이다.
저서로는 총 52종이 있다.
경(經)에 관한 것으로는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 10권, 『반야이취분경주(般若理趣分經注)』 2권, 『금강반야경고적기(金剛般若經古迹記)』 1권, 『신역금강반야경고적기(新譯金剛般若經古迹記)』 1권, 『인왕반야경고적기(仁王般若經古迹記)』 1권, 『반야심경고적기(般若心經古迹記)』 1권, 『반야심경주(般若心經注)』 2권, 『법화경고적기(法華經古迹記)』 4권, 『무량수경고적기(無量壽經古迹記)』 1권, 『관무량수경고적기(觀無量壽經古迹記)』 1권, 『아미타경고적기(阿彌陀經古迹記)』 1권, 『칭찬정토경고적기(稱讚淨土經古迹記)』 1권, 『정토총료간(淨土總料簡)』 1권, 『열반경고적기(涅槃經古迹記)』 8권, 『약사본원경고적기(藥師本願經古迹記)』 2권, 『미륵상생경고적기(彌勒上生經古迹記)』 1권, 『미륵하생경고적기(彌勒下生經古迹記)』 1권, 『미륵성불경고적기(彌勒成佛經古迹記)』 1권, 『금광명경술기(金光明經述記)』 4권, 『금광명경료간(金光明經料簡)』 1권 등 20종, 율(律)에 관한 것으로는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 『범망경보살계본종요(梵網經菩薩戒本宗要)』 1권, 『유가계본종요(瑜伽戒本宗要)』 1권 등 3종, 논(論)에 관한 것으로는 『불지론고적기(佛地論古迹記)』 1권, 『광백론고적기(廣百論古迹記)』 1권, 『장진론고적기(掌珍論古迹記)』 1권, 『유가론고적기(瑜伽論古迹記)』 4권, 『유가론찬요(瑜伽論纂要)』 3권, 『성유식론고적기(成唯識論古迹記)』 10권, 『성유식론결택(成唯識論決擇)』 1권, 『광석본모송(廣釋本母頌)』 3권, 『유식이십송고적기(唯識二十頌古迹記)』 1권, 『섭대승론세친석론고적기(攝大乘論世親釋論古迹記)』 1권, 『섭대승론무성석론고적기(攝大乘論無性釋論古迹記)』 1권, 『중변론고적기(中邊論古迹記)』 1권, 『변중변론고적기(辨中邊論古迹記)』 1권, 『현양론고적기(顯揚論古迹記)』 2권, 『잡집론고적기(雜集論古迹記)』 4권, 『보살장아비달마고적합집(菩薩藏阿毘達磨古迹合集)』 17권, 『성업론고적기(成業論古迹記)』 1권, 『오온론고적기(五蘊論古迹記)』 1권, 『백법론고적기(百法論古迹記)』 1권, 『관소연연론고적기(觀所緣緣論古迹記)』 1권, 『인명입정리론기(因明入正理論記)』 1권, 『인명입정리론고적기(因明入正理論古迹記)』 1권, 『인명입정리론학기(因明入正理論學記)』 1권, 『인명정리문론고적기(因明正理文論古迹記)』 1권, 『기신론내의약탐기(起信論內義略探記)』 1권, 『법원의림대승심로장(法苑義林大乘心路章)』 2권, 『법원의림석명장(法苑義林釋名章)』 1권, 『대승일미장(大乘一味章)』 1권, 『대법론고적기(對法論古迹記)』 4권 등 29종이다.
태현은 신라시대에 있어 원효(元曉) 다음 가는 대저작가로 이들 저술 중 대부분은 거의 없어지고, 현재 『성유식론고적기』‧『기신론내의약탐기』‧『범망경고적기』‧『범망경보살계본종요』‧『약사본원경고적기』 등 5종 만이 현존하고 있다.
전기(傳記)는 따로 전하는 것이 없고, 여러가지 문헌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범망경고적초(梵網經古迹抄)』에는 태현이 “처음에 화엄(華嚴)을 익혔고 뒤에는 법상(法相)에 들어갔다.”고 하였고, 『비망초(備忘抄)』에는 “대현은 휘(諱)로서 혹은 태현(太賢)이라고 한다. 그 덕행을 숨기는 고로 승전(僧傳)에는 보이지 않는다.
혹은 말하기를 현장(玄奘)의 제자 원측(圓測), 원측의 제자 도증(道證), 도증의 제자 태현이라고도 한다.”하였다.
또, 『촬요계몽(撮要啓蒙)』에서는 “본사(本師)의 작품을 통틀어 말하면 2부(部)가 있으니 하나는 소달람장(素怛覽藏, 經藏) 고적기(古迹記)요, 또 하나는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論藏)고적기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간략하지만 태현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서술된 문헌은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의 현유가해화엄조(賢瑜伽海華嚴條)에 의하면, 그는 유가종(瑜伽宗)의 개산조로서 경주 남산의 용장사(茸長寺)에 거주하였다. 용장사에는 돌로 만든 미륵의 장륙불(丈六佛)이 있었으며, 그가 그 주위를 돌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또 지혜와 언변이 정민(精敏)하였고 판단이 분명하였다.
특히, 법상종(法相宗)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후학들이 모두 그의 가르침을 따랐고 중국의 학자들도 그의 저서를 얻어 안목으로 삼았다.
753년(경덕왕 12) 여름에 가뭄이 심하자 왕은 그를 내전으로 청하여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하여 감우(甘雨)를 빌게 하였다.
어느날 재식(齋食)할 때 바루(鉢盂)를 펴고 얼마동안 있었으나 정수(淨水)를 더디게 올리므로 감리(監吏)가 그 이유를 힐문하니, 공자(供者)가 “궁정(宮井)이 말라 멀리서 물을 길어오는 까닭에 이같이 늦었다.”고 하므로, 대현이 이것을 듣고 낮 강경(講經)을 할 때 향로를 받들고 잠자코 있자 얼마 안 있어 우물물이 7장 가량이나 치솟았다.
궁중이 모두 놀라 그 우물을 금광정(金光井)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모든 저술들은 자기 이전의 여러 스승들의 해석에 순응하여 풀이할 뿐, 사견으로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온건한 학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에서 그를 가리켜 ‘유가종의 개조 대덕’이라 한 만큼 그가 신라 유식종(唯識宗)의 종조(宗祖)임이 분명하며, 중심사상은 유식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저서를 통하여 볼 때 화엄(華嚴)‧열반(涅槃)‧반야(般若)‧법화(法華)‧정토교(淨土敎)‧미륵신앙(彌勒信仰)‧보살계사상(菩薩戒思想) 등에 두루 통하고 있다.
그러나 논부(論部)에 관한 저술에서는 유식계통에 관한 것이 11종이나 된다. 다만 유식학에 관한 현존저술이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 8권뿐이어서 그의 독특한 유식사상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 『성유식론학기』에서 찾을 수 있는 독특한 의견은 『우성식론』을, ① 종(宗)을 낮추어서 체(體)를 나타내는 문, ② 제목을 분별하는 문, ③ 문의(文義)를 해석하는 문의 3문으로 나누어 해석한 점이다.
그리고 태현 자신의 유식관으로는 “호법(護法)이 진술한 바의 유식중도(唯識中道)와 경계(境界)‧행(行)‧과(果) 셋으로써 이 논의 종(宗)을 삼는다.”고 한 간단한 문구 중에 나타나 있을 뿐이다.
저서로는 총 52종이 있다.
경(經)에 관한 것으로는 『화엄경고적기(華嚴經古迹記)』 10권, 『반야이취분경주(般若理趣分經注)』 2권, 『금강반야경고적기(金剛般若經古迹記)』 1권, 『신역금강반야경고적기(新譯金剛般若經古迹記)』 1권, 『인왕반야경고적기(仁王般若經古迹記)』 1권, 『반야심경고적기(般若心經古迹記)』 1권, 『반야심경주(般若心經注)』 2권, 『법화경고적기(法華經古迹記)』 4권, 『무량수경고적기(無量壽經古迹記)』 1권, 『관무량수경고적기(觀無量壽經古迹記)』 1권, 『아미타경고적기(阿彌陀經古迹記)』 1권, 『칭찬정토경고적기(稱讚淨土經古迹記)』 1권, 『정토총료간(淨土總料簡)』 1권, 『열반경고적기(涅槃經古迹記)』 8권, 『약사본원경고적기(藥師本願經古迹記)』 2권, 『미륵상생경고적기(彌勒上生經古迹記)』 1권, 『미륵하생경고적기(彌勒下生經古迹記)』 1권, 『미륵성불경고적기(彌勒成佛經古迹記)』 1권, 『금광명경술기(金光明經述記)』 4권, 『금광명경료간(金光明經料簡)』 1권 등 20종, 율(律)에 관한 것으로는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3권, 『범망경보살계본종요(梵網經菩薩戒本宗要)』 1권, 『유가계본종요(瑜伽戒本宗要)』 1권 등 3종, 논(論)에 관한 것으로는 『불지론고적기(佛地論古迹記)』 1권, 『광백론고적기(廣百論古迹記)』 1권, 『장진론고적기(掌珍論古迹記)』 1권, 『유가론고적기(瑜伽論古迹記)』 4권, 『유가론찬요(瑜伽論纂要)』 3권, 『성유식론고적기(成唯識論古迹記)』 10권, 『성유식론결택(成唯識論決擇)』 1권, 『광석본모송(廣釋本母頌)』 3권, 『유식이십송고적기(唯識二十頌古迹記)』 1권, 『섭대승론세친석론고적기(攝大乘論世親釋論古迹記)』 1권, 『섭대승론무성석론고적기(攝大乘論無性釋論古迹記)』 1권, 『중변론고적기(中邊論古迹記)』 1권, 『변중변론고적기(辨中邊論古迹記)』 1권, 『현양론고적기(顯揚論古迹記)』 2권, 『잡집론고적기(雜集論古迹記)』 4권, 『보살장아비달마고적합집(菩薩藏阿毘達磨古迹合集)』 17권, 『성업론고적기(成業論古迹記)』 1권, 『오온론고적기(五蘊論古迹記)』 1권, 『백법론고적기(百法論古迹記)』 1권, 『관소연연론고적기(觀所緣緣論古迹記)』 1권, 『인명입정리론기(因明入正理論記)』 1권, 『인명입정리론고적기(因明入正理論古迹記)』 1권, 『인명입정리론학기(因明入正理論學記)』 1권, 『인명정리문론고적기(因明正理文論古迹記)』 1권, 『기신론내의약탐기(起信論內義略探記)』 1권, 『법원의림대승심로장(法苑義林大乘心路章)』 2권, 『법원의림석명장(法苑義林釋名章)』 1권, 『대승일미장(大乘一味章)』 1권, 『대법론고적기(對法論古迹記)』 4권 등 29종이다.
태현은 신라시대에 있어 원효(元曉) 다음 가는 대저작가로 이들 저술 중 대부분은 거의 없어지고, 현재 『성유식론고적기』‧『기신론내의약탐기』‧『범망경고적기』‧『범망경보살계본종요』‧『약사본원경고적기』 등 5종 만이 현존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韓國歷代高僧傳(金東華, 三星文化文庫 38, 1974)
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東國大學校佛敎文化硏究所, 1976)
朝鮮佛敎通史(李能和, 新文館, 1918)
韓國歷代高僧傳(金東華, 三星文化文庫 38, 1974)
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東國大學校佛敎文化硏究所, 1976)
[집필자]
김위석(金渭錫)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