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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삼(李根三)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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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29
졸년2003
시대대한민국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연극인/극작가

[상세내용]

이근삼(李根三)
1929년 6월 27일~2003년 11월 26일. 현대 연극인‧극작가. 본관은 경주(慶州). 본적과 출신지는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양의 종로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46년 5학년 때 정치적 탄압을 피해 단신으로 월남하였다. 1947년에는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전쟁이 발생하자 통역장교로 입대한 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차출되어 생도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종전 후인 1955년에 27세의 나이로 동국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되었다. 1956년 스미스 만트 그랜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1958년 영문 희곡 『끝없는 실마리』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첫 공연 후, 195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9년 석사 학위를 마치고, 동국대학교에 복직하여 연극영화과 창설에 관여하였다.

1960년 1월 『사상계』에 현대인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린 단막희곡 『원고지』를 발표하면서 국내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2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로 자리를 옮겼고, 1969년에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몸을 담고 1994년 정년까지 봉직하였다.

기존의 사실주의적인 극작술에 반기를 들고 비상식적 인물과 소극적(笑劇的) 요소를 도입하여 극문학에 풍자성을 강조한 희극 형식을 시도하면서 서사적 기법을 도입하는 등 전후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부조리연극의 대표 작가였다.

1963년 민중극단을 창단하여 대표가 되었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1982), 대한민국예술원회원(1991), 방송위원회 심의위원회위원장(1992)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창작희곡집 『제18공화국』(1967), 『유랑극단』(1976),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1986), 『국물 있사옵니다』(1988), 『이성계의 부동산』(1994),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연기』(2001) 등이 있으며, 극 이론서 『근대영미희곡개론』(1962), 『구미연극산고』(1970), 『연극의 정론』(1970), 『서양연극사』(1982), 『연극개론』(1984) 등이 있다. 이밖에 『실수연발』(1969), 『동물원 이야기』(1969) 등 50여 편의 희곡을 번역하고 10여 권의 번역서를 발간하였다.

대한민국예술원상(1992), 국민훈장모란장(1994), 옥관문화훈장(1994) 등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재옥(李載玉)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