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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철(趙南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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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송원(松垣)
생년1923
졸년2006
시대대한민국
본관풍양(豊壤)
활동분야바둑기사

[상세내용]

조남철(趙南哲)
1923년 11월 30일~2006년 7월 2일. 현대 바둑기사. 호는 송원(松垣)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고, 본적은 서울시 중구(中區)이다. 출생지는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이다.

부인은 최충순이다. 조카는 바둑인 조상연 5단과 조치훈 9단이고, 큰 형의 외손자는 바둑인 최규병 9단과 이성재 9단으로 한국 최고의 바둑명가(明家)로 거론된다.

1937년 서울 종로구(鐘路區)에 있는 교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 기사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41년 일본 기원에 입단하여 전문 기사로 활동을 펼치다가 1944년 귀국하였다.

1945년 11월 서울에 한성기원을 창립하였는데, 1946년 이름을 바꿔 조선기원이라 하였으며, 1948년에 다시 대한기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48년 명인전에서 6연승을 하였고, 1962년 국수전과 최고위전에서 3연승을 하였다. 또한, 1965년 국수전에서 9연승을 거두면서 명예국수가 되었으며, 1975년에는 최강자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1977년 한국기원 이사가 되었으며, 1984년 한국기원 명예이사장과 한국일보 바둑담당 고문직을 겸임하였다. 1994년 제18기 국기전에 최고령 선수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1997년부터 명지대학교 체육학부 바둑학과에서 객원교수로 출강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제자로 김인‧윤기현‧하찬석‧조훈현‧조치훈 등이 있다.

저서로는 『위기개론(圍碁槪論)』‧『사활의 기초』‧『행마의 급소』‧『흑백의 발자취』‧『정석정해』‧『포석의 요령』‧『일본명인기사전집』‧『바둑에 살다』 등이 있으며, 회고록 『세 번의 눈물』이 있다.

1984년 일본기원대창상(日本棋院大倉賞), 1989년 은관문화훈장, 1994년 바둑문화상 감투상, 1998년 제4회 운경상(雲耕賞) 문화언론 부문 등을 받았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조성연이고, 딸은 조영수‧조영민이다.

묘는 경기도 양평공원(楊平公園)에 있다.

[참고문헌]

부안독립신문 88호(2006. 07. 07)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