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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상(李胄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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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915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상세내용]

이주상(李胄相)
1915년∼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충청남도 아산(牙山)이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익혔다.

1935년부터 서울과 함경남도 함흥(咸興)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37년 7월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 청량리(淸凉里)소학교 신축공사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만난 김삼룡(金三龍)의 권유로 경성콤그룹 조직원이 되었다. 이후 경기도 부천(富川) 일흥사(日興社) 등의 공장에서 적색노동조합 조직을 위해 경성콤그룹 기관지인 『코뮤니스트』를 살포하였다. 같은 해 10월 경성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결성에 동참하고 금속부 담당자가 되었다.

1941년 5월 노동자들에게 배포한 「우리는 왜 가난한가」라는 글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9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3년 10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45년 8월 초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 결성에 동참하였고, 같은 해 9월 조선인민공화국 노동부장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1946년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에, 1950년 조선노동당 충남도당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 후 조선노동당 의용군 충청남도 대전(大田) 여단장이 되어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51년 조선노동당 중앙당 간부부 부부장(副部長)직에 올랐다.

[참고문헌]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