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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태(金煥泰)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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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눌인(訥人)
생년1909(융희 3)
졸년1944
시대항일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문학 > 평론가
김종원(金鍾元)
고씨(高氏)
출신지전라북도 무주
묘소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공동묘지
저서『김환태전집』

[상세내용]

김환태(金煥泰)
1909년∼1944년. 문학평론가.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눌인(訥人). 전라북도 무주 출신.

부친은 김종원(金鍾元)이며, 모친은 고씨(高氏)이다.

무주에서 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1922년 13세에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이듬해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입, 1927년에 졸업하였다.

그뒤 1928년 일본 동경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예과에 입학하여 1931년 수료하였으며, 1934년 구주대학(九州大學)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시샤대학 재학시절 정지용(鄭芝溶)과 친교를 맺었고, 졸업논문은 아놀드(Arnold, M.)에 관한 것이었다.

귀국 후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明信中學校)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1934년 3월 최초의 번역문 「예술과 과학과 미」를 『조선일보』에 발표하였다. 이어서 같은해 4월에 『조선일보』에 「문예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야」라는 최초의 평론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전개하였다.

1936년에 ‘구인회(九人會)’에 입회, 후기동인으로 참여하였고, 『시문학(詩文學)』『시원(詩苑)』의 동인으로도 활약하였다. 민족항일기 말기에 사상관계로 1개월 동안 수감되었다가 다시 낙향하기도 하였으며, 1943년에 상경하여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비평의 목적은 ‘재구성적 체험’에 있다고 파악하여, 인상주의 비평을 내세워 1930년대 평단에 새로운 비평경향을 낳게 하였다.

특히, 카프(KAPF)의 공리주의적인 문학을 반대하고 비평과 문학의 독립성‧순수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또한, 콜리지(Coleridge, S. T.)아놀드페이터(Pater, W. H.)뵈브(Beuve, S.)프랑스(France, A.)지드(Gide, A.) 등의 다양한 이론을 도입하여 현대비평의 기초를 확립시킨 공이 컸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유저로 『김환태전집』이 1972년에 나왔으며, 주요평론으로 「문예시평(文藝時評)―나의 비평태도」(1934)‧「예술의 순수성」(1934)‧「비평태도에 대한 변석(辯釋)」(1936)‧「정지용론(鄭芝溶論)」(1938)‧「순수시비(純粹是非)」(1939)‧「문학의 성격과 시대」(1940) 등이 있다.

[참고문헌]

國文學全史(白鐵‧李秉岐, 新丘文化社, 1966)
韓國現代文學史(趙演鉉, 成文閣, 1980)
신념으로 문학을 지킨 김환태형(李軒求, 현대문학 98, 1963. 2.)

[집필자]

윤병로(尹炳魯)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