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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명(李海鳴)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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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귀연(李龜淵)
일명(一名)이해명(李海明)
일명(一名)이해명(李解明)
호(號)태용(泰龍)
생년1896(건양 1)
졸년1950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상세내용]

이해명(李海鳴)
1896년(건양 1) 2월 8일∼1950년 8월 14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호는 태용(泰龍)이고, 다른 이름은 이구연(李龜淵)‧이해명(李海明)‧이해명(李解明)이 있다. 본적은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곡면(谷面)이고, 거주지는 중국 사천성(四川省) 중경(重慶)이다.

1928년 10월 16일 박인식(朴仁植)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박용만(朴容萬)을 암살기도한 혐의로 법원에서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인 12월에 중앙육군군관학교 성자(星子) 강릉분교(江陵分校)에 입학하였다.

1938년 5월 중앙육군군관학교 강릉분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10월 조선의용대 대원으로 입대한 후 제1구대 제2분대 부분대장이 되었다.

조선의용대가 항일투쟁 근거지인 화북(華北) 팔로군(八路軍) 지역으로 갔을 때 이해명(李海鳴)은 국민당 지구에 남아 활약하였다.

그 후 조선민족혁명당 당원자격으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강원도의원직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무장독립군인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군법관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5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17명이 독립운동자대표대회 개최를 제의할 때 동참하였다.

1946년 8월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직을 지낸 후 월북하였다.

198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건국훈장 독립장에는 유공자명이 ‘이구연’으로 되어있다.

[참고문헌]

韓國獨立運動史 資料(國史編纂委員會編)
독립운동사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