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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수(張德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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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설산(雪山)
생년1895(고종 32)
졸년1947
시대항일기
활동분야호국 > 독립운동가
장붕도(張鵬道)
출신지황해도 재령

[상세내용]

장덕수(張德秀)
1895년(고종 32)∼1947년.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설산(雪山). 황해도 재령 출신. 장붕도(張鵬道)의 아들이며, 김성수(金性洙)송진우(宋鎭禹)와 교유하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소학교육도 변변히 받기가 힘들었다. 진남포의 한 기관의 급사로 있으면서 강의록으로 공부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모교 은사가 조선총독부의 관리가 되기를 종용하였으나, 조선총독부의 머슴이 되려고 배운 공부가 아니라며 이를 거부하고 상해(上海)로 망명, 조국광복운동에 가담하였다.

3‧1운동의 모의를 위하여 국내에 들어오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전라도 하의도에 거주제한을 당하였으나 여운형(呂運亨)의 이른바 ‘동경회담’에 통역으로 동행하게 되어 거주제한에서 풀려났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초대 주필이 되었다. 변설(辯說)에도 능하였지만 문재(文才)에도 뛰어났다. 그가 집필한 창간사는 명문장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23년 미국유학의 길에 올라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한때 보성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사 부사장으로 언론계에 복귀하였으나, 『동아일보』가 폐간당한 뒤에는 조용히 광복되는 날까지 기다렸다.

광복과 더불어 송진우김병로(金炳魯) 등과 한국민주당을 창당, 외교부장‧정치부장 등을 지내면서 보수진영의 대표적 이론가로 활약하였다. 광복 직후 민주국가를 위하여 노력하다가 현직경관인 암살범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참고문헌]

雪山 張德秀(李敬南, 東亞日報社, 1981)

[집필자]

제재형(諸宰馨)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