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유억겸(兪億兼)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720C5B5ACB8B1895X0
생년1895(고종 32)
졸년1947
시대항일기
활동분야교육 > 교육가
유길준(兪吉濬)
출신지서울
공훈대한민국장

[상세내용]

유억겸(兪億兼)
1895년(고종 32)∼1947년. 교육가. 서울 출신. 부친은 유길준(兪吉濬)이며, 모친은 순종의 황후 윤씨(尹氏)의 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자인 할아버지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909년 계산학교(桂山學校)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同志社) 중학교와 경도관립제삼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동경대학(東京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같은해 9월부터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상과에서 법학을 강의하였다.

1923년에 연희전문학교 학감(學監)으로 재직하다가 1934년에 부교장을 겸임하였다.

특히 체육에 관심이 깊어, 그의 주선으로 연희전문학교 주최 전국중학교체육대회를 매년 개최하기도 하였다.

흥업구락부사건(興業俱樂部事件)으로 일제에 의하여 서대문경찰서에서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기소유예로 나와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을 사임하였으며, 1937년부터 변호사업을 시작하였다.

1941년 윤치호(尹致昊)가 연희전문학교 교장이 되면서 서무부장으로 복직되었다가, 1942년 9월 일제의 사립학교 탄압이 가중되자 다시 사임하였다.

광복 후 연희전문학교의 교장에 취임하여 학교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어 기독교청년회 회장을 지냈으며, 1946년에는 미군정의 문교부장(지금의 문교부장관)에 취임하였다.

당시 문교차장 오천석(吳天錫)이 제안한 국립대학안을 실현시키는 등 대한민국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작업을 하였다.

또한, 1920∼1947년까지 제8대‧10대‧12대 대한체육회 회장을 지냈으며, 각종 국제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1962년 제17회 광복절을 맞아 교육부문의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연세대학교에 유억겸기념관이 있다.

[참고문헌]

延世大學校史(延世大學校, 1969)
眞理와 自由의 旗手들(延世大學校, 1982)

[집필자]

손인수(孫仁銖)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