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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묵(吳成黙)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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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886(고종 23)
졸년?(미상)
시대항일기
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
출생지함경북도 명천

[상세내용]

오성묵(吳成黙)
1886년(고종 23)∼미상. 사회주의운동가. 함경북도 명천 출생.

6세 되던 해 부모와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였으며, 언제 시베리아로 이주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915년 당시는 극동시베리아의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 살았고, 이때 건설노동장에 징집되어 벌목장 통역원이 되었다.

1918년 4월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동휘(李東輝)김립(金立)박애(朴愛)김(金)알렉산드라‧유스쩨빤‧오하묵(吳夏黙)이인섭(李仁燮)이경희 등과 함께 한인사회동맹을 결성하는 데 참가하였고, 1919년초 러시아공산당원(볼셰비키)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르즈와민주주의적 사조(思潮)의 민족독립운동자들과는 사상과 행동을 달리하게 되었다. 부르즈와민주주의적 민족독립운동가들은 극동시베리아에 한인자치지구를 건설하려 했음에 비하여 그를 포함한 한인볼셰비키들은 극동 시베리아에 러시아볼셰비키정권을 확립하는 일을 선행시켰다.

1919년 3월 국내의 3‧1운동에 자극을 받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한인노동자들의 시위가 볼셰비키조직에 의하여 시도되었다. 이 때, 그는 문안을 작성하여 우수리스크에서 인쇄하여 자신의 처(신혜)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에 운반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20년 4월 일본 시베리아출병군이 한인사회를 무차별습격한 이른바 4월참변이 발생하자 중국 상해로 피신하였다가 1921년 봄에 치타로 돌아와 이곳에서 극동공화국의 인민혁명군 참모부의 통역관이 되었다.

러시아국내전쟁이 끝나자 1923년 3월부터 하바로프스크시당 교육요원 및 연해주당고려부(沿海州黨高麗部) 기관지 『선봉(先鋒)』의 편집장이 되었다. 동시에 연해주 조선인 거주민과 중국인 거주민에게 정치교육사업을 펼쳤다.

[참고문헌]

韓國共産主義運動史 1(金俊燁‧金昌順, 高麗大學校亞細亞問題硏究所, 1967)
일제하 극동 시베리아의 한인사회주의자들(마뜨베이 찌모피예비치 김 저, 이준형 역, 역사비평사, 1990)

[집필자]

김창순(金昌順)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