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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하(楊在河)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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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청본재하(靑本在河)
생년1883(고종 20)
졸년1946
시대항일기
활동분야관료

[상세내용]

양재하(楊在河)
1883년(고종 20) 6월 20일∼1946년 11월 21일. 일제 강점기 관료. 창씨한 이름은 청본재하(靑本在河)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 수성면(壽城面)이다.

부친은 양중계(楊重癸)이다.

1913년 일본의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농과대학 임학과(林學科)를 졸업한 뒤 이왕직(李王職) 산림사무(山林事務) 촉탁에 임명되었다. 1919년 계림농림주식회사(鷄林農林株式會社)의 지배인이 되었고, 1914년 주식회사 대동사(大同社)의 지배인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에 조선인 최초 외교관이 되어 봉천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부영사(副領事)로 재직하였고, 1925년에는 호놀룰루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근무하였다. 1929년 경상남도 양산군수를 지냈고, 1930년 조선총독부 사무관 및 내무국 겸 관방(官房) 외사과에서 근무하였다. 1934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6년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殖株式會社) 창립준비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충청북도 참여관에 임명되어 약 2년간 역임하였다. 참여관으로 재직하던 중에는 내선일체와 농어촌진흥운동 등 일제의 식민통치를 선전하고 찬양하는 연설을 여러 차례 발표하여 1938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받았고, 고등관2등으로 승서되었다.

이후 문관분한령(文官分限令)에 의해 휴직한 뒤 의원면직되었다. 조선인 만주이민 사업을 진행한 만선척식주식회사(滿鮮拓殖株式會社)와 자금투자 및 조선 서북지역의 개척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殖株式會社)에서 1938년 9월부터 약 2년간 감사를 역임하였다. 1941년부터는 조선인광주식회사(朝鮮燐鑛株式會社) 감사를 지냈다.

슬하에 5남을 두었으며, 장남은 양일갑(楊一甲)이다.

[참고문헌]

敍勳 卷3 內國人3(1938)
조선인사흥신록(1935)
조선총독부관보(1929.3.18) 외
동아일보(1921.9.25)
선만척식주식회사 만선척식주식회사 5년사(1941) 등

[집필자]

김은지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