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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소(尹致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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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동치소(伊東致昭)
자(字)자경(子敬)
호(號)동야(東野)
생년1871(고종 8)
졸년1944
시대조선후기
본관해평(海平)
활동분야종교 > 기독교인

[상세내용]

윤치소(尹致昭)
1871년(고종 8) 8월 25일∼1944년 2월 20일. 일제 강점기 기독교인‧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자는 자경(子敬)이고, 호는 동야(東野)이고, 창씨명은 이동치소(伊東致昭)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둔포면(屯浦面)이다.

조부는 윤취동(尹取東)이고, 부친 연구(蓮龜) 윤영렬(尹英烈)과 모친 청주한씨(淸州韓氏) 한진숙(韓鎭淑)과의 사이에서 6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윤치오(尹致旿)이고, 동생으로 윤치성(尹致晟)‧윤치병(尹致昞)‧윤치명(尹致明)‧윤치영(尹致暎)이 있다. 정치인으로 유명했던 사촌 형 윤치호(尹致昊)와 대한민국 제1대 내무부 장관이었던 사촌 동생 윤치영(尹致暎)과 함께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부인은 이범숙(李範淑)이다.

1898년에는 윤치호와 함께『경성신문(京城新聞)』을 창간하였으며, 대한제국말기에는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감사직을 지냈으며, 1911년부터는 농사개량을 주도하던 농담회(農談會)에도 참여하였다. 1910년대에는 광산업과 주식회사 경성직뉴(京城織紐)의 사업가로, 1915년에는 경성협찬회(京城協贊會) 정회원으로서 조선통치 5주년을 기념하는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를 지원하였다.

1920년에는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의 이사직을 지냈고, 일본 정부의 교육자문기구인 경성학교비평의회의 평의원으로도 활약하였다.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중추원참의로서 연수당 600원을 받았으며, 퇴임할 때 정7위에 서위되었다.

1917년부터 사망 때까지 서울 안동교회장로였는데, 기독교장로회로서 1941년 전시체제로 들어간 일본 정부에 비행기 헌납을 주도하는 역할과 임전보국단(臨戰報國團) 발기인 등으로 활약하면서 일본 정부에 협조하였다. 1940년에는 해평윤씨 문중대표로서 ‘이토[伊東]’로 창씨 할 것을 의결하였다.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는데,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장남 윤보선(尹潽善) 외에 아들 윤완선(尹浣善)‧윤원선(尹源善)‧윤한선(尹漢善)‧윤택선(尹澤善)‧윤형선(尹瀅善)과 딸 윤예경(尹禮卿)‧윤의경(尹義卿)‧윤계경(尹桂卿)이다.

[참고문헌]

매일신보(1938.5.8) 등
윤치호 일기(김상태 편역, 역사비평사, 1940)
朝鮮監理會報(1938.6.1)
조선총독부관보(1924.5.3) 등

[집필자]

신상범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