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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부(申善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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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천여(天如)
생년1667(현종 8)
졸년1744(영조 20)
시대조선후기
본관고령(高靈)
활동분야예술‧체육 > 서화가
신호(申滈)

[상세내용]

신선부(申善溥)
1667년(현종 8)∼1744년(영조 20).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천여(天如).

우참찬 신공제(申公濟)의 후손으로, 부친은 행통례원인의(行通禮院引儀) 신호(申滈)이다. 당시(唐詩)와 진(晉) 나라 시대 필법에 능하고 그림도 신묘하여, 세상에서는 삼절(三絶)이라고 일컬었다. 국초 이래 삼백년 동안에 나오기 드문 인재였으나, 20세 이후에는 붓을 잡지 않아 전해지는 작품은 없다. 또한 손(孫)오(吳)의 책 병법서를 좋아하여 공수영진(攻守營陣)‧기정합산(奇正合散)‧천시음양(天時陰陽)의 법에 대하여 두루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기형의품(璣衡儀品), 보시종(報時鐘), 전진(戰陣) 기계, 배, 수레 등과 그 외에 이용하는 도구를 모두 옛 법제를 이해하였고 때로는 새로운 뜻을 찾아내어 완성한 것이 많았다. 그것들을 모두 시험해 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서른 살이던 1696년(숙종 22)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49위로 합격하였으나 마흔이 되면서는 과거시험 보는 것을 그만두고 순창(淳昌)으로 낙향하여 귀래정(歸來亭) 남쪽에 띠풀로 집을 짓고, 소요하다가 향년 78세로 일생을 마쳤다. 아들로는 신뢰(申洡), 신만(申澫)신현(申灦)을 두었는데, 맏아들 신뢰는 종가(宗家)의 신선영(申善泳)에게 양자로 가서 신경준(申景濬)을 낳았다. 손자 신경준이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여암유고(旅菴遺稿)』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旅菴遺稿(申景濬)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