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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牟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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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순지(恂之)
호(號)절강(截江)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모세택(牟世澤)
처부정존(鄭存)
공신호원종공신(原從功臣)

[상세내용]

모순(牟恂)
생졸년 미상.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순지(恂之), 호는 절강(截江).

부친은 첨정(僉正) 모세택(牟世澤)이고, 장인은 정존(鄭存)이다.

김종직(: 1431∼1492)의 부친 김숙자(金叔滋)와는 과거시험을 치를 때 알게 되어 교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1417년(태종 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6위에 급제하여 거창현감(居昌縣監), 좌우헌납,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사헌집의(司憲執義),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좌사간(左司諫), 의정부(議政府)사인(舍人)검상(檢祥) 등을 지냈는데 지합천군사(知陜川郡事)로 재임하던 중에는 선정을 베풀었다. 1443년(세종 25)에는 군기감정(軍器監正)으로서 체찰부사(體察副使)의 임무를 띄고 일본(日本)의 도적들이 납치해 간 조선 백성을 찾아오기 위해 7월말에 대마도(對馬島)에 가서 11월초에 돌아왔다. 이때 적왜(賊倭)를 잡은 공로로 두 자급(資級)이 올랐다. 1446년(세종 28) 전제소별감(田制所別監)에서 회양부사(淮陽府事)를 제수받았을 때는 전제소에서 ‘이 사람이 없으면 전제(田制)의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라며 고쳐 임명하기를 청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녹훈(錄勳)되었으나, 세조의 회유를 끝내 거절하여 진주(晉州)로 유배를 가 사봉면(寺奉面) 방촌리 뇌동에서 세상을 떠나니 괘종산에 장사하고 후손들이 대대로 방촌리 등건(登巾)에 살았다.

효행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장례에 강물이 불어 장지로 갈 수 없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통곡하니 강물이 갈라졌다고 한다. ‘절강(截江)’이 그의 호가 되었다. 세종 조에 정려(旌閭)를 받았는데 방촌리 등건에 세워졌다고 한다. 한편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건지리 참밭마을에도 1934년에 세워진 ‘장수(長水) 효자(孝子) 모순지려(牟恂之閭)’라는 정려각이 있는데, 1980년 화재로 소실되어 1981년 재건하였고, 정려각 정면 위에는 ‘절강선생지려(截江先生之閭)’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안에는 “효자 통정대부 행좌사간 함평모공순지려(孝子通政大夫行左司諫咸平牟公恂之閭)”라 음각된 비석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新增東國輿地勝覽
佔畢齋集(金宗直)
彛尊錄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고윤희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