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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莊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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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선(李愃)
일명(一名)사도세자(思悼世子)
자(字)윤관(允寬)
호(號)의재(毅齋)
시호(諡號)장헌(莊獻)
생년1735(영조 11)
졸년1762(영조 38)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왕자
영빈이씨(映嬪李氏)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金氏)
숙의문씨(淑儀文氏)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처부홍봉한(洪鳳漢)
외조부김한구(金漢耉)

[상세내용]

장조(莊祖)
1735년(영조 11)∼1762년. 뒤주 속에 갇혀 굶어 죽은 영조의 둘째왕자.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선(愃).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 사도세자(思悼世子)라고도 한다. 모친은 영빈이씨(映嬪李氏)이며, 부인은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인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孝章世子: 眞宗으로 추존됨.)가 일찍 죽고 영조의 나이 40세가 넘어서 출생한 탓으로 2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고, 10세 때 혼인하여 곧 별궁에 거처하였다. 그는 나면서부터 매우 영특하였다.

3세 때 이미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을 외우고, 7세 때 『동몽선습』을 떼었다.

또한, 글씨를 좋아해서 수시로 문자를 쓰고 시를 지어서 대신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영특한 그는 10세 때 이미 정치에 대한 안목이 생겨 집권세력인 노론들이 처결한 바 있는 신임사화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부왕을 대신하여 서정(庶政)을 대리하게 되자, 그를 싫어하는 노론들과 이에 동조하는 계비(繼妃)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金氏), 숙의문씨(淑儀文氏) 등이 영조에게 그를 무고하였다.

성격이 과격한 영조는 수시로 세자를 불러 크게 꾸짖으니 마침내 그는 격간도동(膈間挑動)이라는 정신질환에 걸렸다.

함부로 궁녀를 죽이고, 여승을 입궁시키며, 한 나라의 서정을 맡고서도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평양을 내왕하는 등 난행과 광태를 일삼았다.

그 병의 증상에 대하여 그의 장인인 홍봉한은 “무엇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병이 아닌 것 같은 병이 수시로 발작한다(無可指之形 非病而病 作歇無常).”고 하였다.

1761년에 계비 김씨의 아비인 김한구(金漢耉)와 그 일파인 홍계희(洪啓禧)윤급(尹汲) 등의 사주를 받은 나경언(羅景彦)이 세자의 비행10조목을 상소하였다.

영조는 대로하여 마침내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휘령전(徽寧殿)으로 불러 자결을 명하였다. 세자가 끝내 자결을 하지 않자, 그를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 속에 가두어 8일 만에 죽게 하였다.

그가 죽은 뒤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 때는 친히 나아가 스스로 신주(神主)에 제주(題主)를 하면서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莊獻)으로 추존되고, 1899년에 다시 장조(莊祖)로 추존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璿源系譜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