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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익(李鎭翼)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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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운경(雲卿)
생년1728(영조 4)
졸년?(미상)
시대조선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이숙(李埱)

[상세내용]

이진익(李鎭翼)
1728년(영조 4)~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운경(雲卿)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출신지는 한양(漢陽)이다.

증조부는 인조(仁祖)의 셋째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이고, 조부는 의원군(義原君) 이혁(李爀)이며, 부친은 안흥군(安興君) 이숙(李埱)이다. 1751년(영조 27) 인평대군의 후손으로 효종‧현종‧숙종의 어필을 받들고 입시하였다. 1753년(영조 29) 식년시에 진사 2등 18위로 합격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서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제수되었다. 1776년(영조 52) 11월 정사(政事)에서 부총관(副摠管)에 제수되었고, 1777년(정조 1)에는 영월부사(寧越府使)에 제수되었다. 1780년(정조 4)에는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있으면서 비축해두어야 할 미곡마저 환곡하여 이익을 꾀하고, 공금을 횡령하는 등의 불법을 저질렀다는 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서울로 잡혀왔으나, 1781년(정조 5) 1월 의금부(義禁府)에서 장(杖) 80대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같은 해 5월, 관직에서 파직된 것이 아니라 바로 경주로 내려가야 함에도 내려가지 않다가 영의정(領議政) 서명선(徐命善)의 탄핵을 받고 다음날로 내려갔다. 6월에는 경상감사(慶尙監司) 이문원(李文源)이 자주 자리를 비운 탓에 행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였다며 인사고과 점수에서 하(下)를 주었다. 1782년(정조 6)에는 1월 부총관(副摠管)에 제수되었고, 4월에는 한성우윤(漢城右尹)에 제수되었다. 같은 해 6월에 왕이 전배(展拜)할 때 총관(摠管)으로 보검(寶劍)을 들고 시위하여야 함에도 다른 총관과 할 일을 서로 미루다가 90세에 가까운 총관이 시위한 일로 파직된 뒤에 의금부에 잡혀가서 장 80대에 해당하는 벌금과 고신(告身) 1등이 깎였다. 1783년(정조 7)에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과 『자휼전칙(字恤典則)』을 하사받았다. 1785년(정조 9)에는 총관에 제수되었다.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의 증조부로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증직되었다. 아들은 이병원(李秉源)이고, 손자는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이며, 증손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고, 고손은 고종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譯日省錄
國譯承政院日記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