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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신(元守身)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6D0C218C2E0D1623X0
생년?(미상)
졸년1623(인조 1)
시대조선중기
본관원주(原州)
활동분야무신

[관련정보]

[상세내용]

원수신(元守身)
미상∼1623년(인조). 조선 중기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1597년(선조 30)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병조판서(兵曹判書)‧청주판관(淸州判官)‧안변부사(安邊府使) 등을 역임하였고, 전라우수군절도사(全羅右水軍節度使)로 나갔을 때는 용선(龍船)을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1617년(광해군 9) 훈련도감중군(訓練都監中軍)의 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시켜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는 문제에 대한 상소를 의정부에서 논의할 때,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을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자신의 딸이 광해군 후궁인 숙의원씨(淑儀元氏)로 간택되자 처신을 잘못하여 많은 비판과 함께 귀향 보내야 한다는 의론이 분분하였다. 1623년(인조) 통제사(統制使)로서 직분을 게을리한다는 조정의 의론이 있었고, 이후 잡아들여져 사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집필자]

김경희
수정일수정내역
2011-10-312011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