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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빈(鄭𢣐)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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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공백(恭伯)
호(號)곡구(谷口)
생년1566(명종 21)
졸년1640(인조 18)
시대조선중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관료 > 관리
정사익(鄭思翊)
출신지전라남도 여수시(麗水市) 소라면(召羅面) 현천리(玄川里)

[상세내용]

정빈(鄭𢣐)
1566년(명종 21)(주1)
생년
『선원록(璿源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1047]) 권35, [世祖大王宗親錄](34a쪽)을 참고하여 생년을 추가.
~1640년(인조 18)(주2)
졸년
조원래, 「17세기 순천지역 경주정씨가(慶州鄭氏家)의 사회 경제적 기반」, 『고문서연구』 33권(2008)을 참고하여 졸년을 추가.
. 조선 중기 관리이다. 자는 공백(恭伯), 호는 곡구(谷口).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여수시(麗水市) 소라면(召羅面) 현천리(玄川里)이다.

좌찬성(左贊成) 정지년(鄭知年)의 후손이며, 부사직(副司直) 정사익(鄭思翊)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순창조씨(淳昌趙氏) 조선종(趙善種)이고, 처부는 순창조씨(淳昌趙氏) 조윤련(趙潤璉)이다.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이다. 몸가짐이 공손하고 근엄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임진왜란 때 27세의 나이로, 숙부 정사횡(鄭思竑)과 함께 거병하였다. 가동을 거느리고, 군량미 1천 석을 임금이 있던 의주(義州) 행재소까지 뱃길로 옮겼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그 충절을 조정에 알려 사온서봉사(司醞署奉事)의 직이 내렸졌다. 그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낭천(狼川), 직산(稷山), 전의(全義), 아산(牙山) 등지의 현감(縣監)을 역임하였고, 4읍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1801년(순조 1)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1842년(헌종 8) 순천(順川) 옥계서원(玉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여수‧여천향토지

[집필자]

전주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