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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군(仁城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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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공(李珙)
호(號)백인당(百忍堂)
시호(諡號)효민(孝愍)
생년1588(선조 21)
졸년1628(인조 6)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종친
정빈 민씨(靜嬪閔氏)

[상세내용]

인성군(仁城君)
1588년(선조 21)∼1628년(인조 6). 조선 중기의 종실.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공(李珙). 호는 백인당(百忍堂).

선조의 일곱째아들이며, 모친은 정빈(靜嬪) 민씨(閔氏)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선조가 특히 사랑하였으며 공부를 시작하자 학업이 일취월장하였다.

12세에 인성군으로 책봉되었으며, 장성하여서는 사옹원종부시도제조종친부의 유사(有司)를 겸직하였다.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관대하면서도 엄격하였으므로 관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광해군의 시기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가는 것을 보고 이이첨(李爾瞻) 등이 사형수를 사주하여 무고하니, 대궐 문밖에 자리를 깔고 처분을 기다리기를 며칠씩 하다가 울분한 마음에 병이 들어 3년간이나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왕은 숙부의 예로써 대우하였으나,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고 그때 잡혀 들어온 자들이 모두 혐의를 뒤집어 씌웠으므로 왕도 할 수 없이 간성으로 귀양보내었다. 후에 원주로 옮겼다가 어머니 민씨의 병이 위독하므로 관대한 처분을 받고 돌아왔다.

그러나 1628년 유효립(柳孝立) 등이 대북파의 잔당을 규합하여 모반을 기도할 때에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다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자살을 강요받고 죽었다.

1637년에 복관되었다.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宗班行錄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명 : "공(珙)"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3宫出○娶平山申氏判尹贈領議政平陽府院君砬女六男順和君順嬪金氏出○娶長水黃氏承旨贈左䝺成赫女七男仁城君靜嬪閔氏出○娶海平尹氏判書贈領議政承吉女八男義昌君珖儲慶宫出○娶陽川許氏判書贈左䝺成筬女九男慶昌君珘
紀年便攷v19於天倫何圖今日又聞此論天乎天乎予有何罪寕欲脫屣人間掉臂長徃遵海而䖏以終餘年宜察予悃勿復有言継而仁城君慶昌君珘慶平君玏并宣祖王子率諸宗親請廢大妃荅曰宗戚亦忍為此言耶庭請啓荅曰行㐫裕陵呪咀先后謀害寡躬事係
紀年便攷v19仁城君
紀年便攷v19路遠改珎島大司諫鄭蘊請全恩上曰忠直之說予甚嘉之三司百官合啓乃命賜死妻孥配濟州鄭蘊疏請復官李貴劾請斬蘊被罪時年四十一及丁丑元日上獨㘴忽有人入㐲床前起拜訴哀聲甚悲語畢仍忽不見其語甚細侍者不得詳聞上亦不言其
紀年便攷v19命勿問甲子适亂獄起其黨皆以珙為言朝廷請置法上不從李貴上白曰既負廢母之罪且出獄囚之招朴弘耉諸子謀逆又引大臣陳啓由欽奏曰容貸至親亦聖德事李貴罵之申欽乞退上責李貴及戊辰柳孝立獄又有賊招有珙宻奉慈㫖誘聚凶徒等
紀年便攷v19朴弘耉諸子謀逆又引珙大臣陳啓由欽奏曰容貸至親亦聖德事李貴罵之申欽乞退上責李貴及戊辰柳孝立獄又有賊招有宻奉慈㫖誘聚凶徒等語遂命安置于濟州以路遠改珎島大司諫鄭蘊請全恩上曰忠直之說予甚嘉之三司百官合啓乃命賜
紀年便攷v19仁城君宣祖子静嬪閔氏出尹承吉婿號百忍年十二封君光海丁巳廢母后獻議曰㐲聞儒䟽大㮣無非為君父忠誠安宗社大計而况
紀年便攷v19数大妃十罪仁祖反正削奪官爵謫杆城移原州時有李有林謀反事覺称以仁城君為椎戴上命勿問甲子适亂獄起其黨皆以為言朝廷請置法上不從李貴上白曰既負廢母之罪且出獄囚之招朴弘耉諸子謀逆又引珙大臣陳啓由欽奏曰容貸至親亦
國朝人物志v2初封興安君宣祖別子靜嬪韓氏出也甲子李适擧兵叛其意在仁城君珙而從仁祖駕幸南下故不得已立瑅瑅不扈從逃俟投适僭以王號以忠吉爲大將以衛之及敗走
國朝人物志v2事初定人心危疑有李有林謀反事覺供稱以仁城君爲推戴上命勿問甲子李适獄起其黨皆以爲言遂遷珙于江陵日月錄延平府院君李貴上白曰旣負廢母之罪且以獄招言之托以科擧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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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