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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공(南以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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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경(以敬)
자(字)자안(子安)
호(號)설사(雪蓑)
생년1565(명종 20)
졸년1640(인조 18)
시대조선중기
본관의령(宜寧)
활동분야문신 > 문신
남호(南琥)
저서『설사집』

[상세내용]

남이공(南以恭)
1565년(명종 20)∼1640년(인조 1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초명은 남이경(南以敬), 자는 자안(子安), 호는 설사(雪蓑). 남호(南琥)의 아들이며, 참판 남이신(南以信)의 아우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1593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가 되고, 이듬해 평안도암행어사를 거쳐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체찰사(體察使) 이원익(李元翼)종사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이조좌랑정랑을 거쳤다.

1598년 이발(李潑)정인홍(鄭仁弘) 등과 북인(北人)의 우두머리로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왜와 화의를 주장하였다 하여 탄핵, 파직시켰다.

뒤에 북인이 집권하자 북인은 대북(大北)‧소북(小北)으로 분열되었는데, 유영경(柳永慶)과 함께 소북을 영도하였으나 다시 남당(南黨: 淸小北)과 유당(柳黨: 濁小北)으로 나뉘었다. 선조 말년에 소북과 대북 사이에 왕위계승문제로 치열한 싸움 끝에 대북이 지지하던 광해군이 즉위함에 따라 유영경과 함께 파직당했다가 다시 기용되어 1609년(광해군 1) 형조참의대사간이조참의예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홍문관부제학, 1613년 호조참판도승지예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병조참판이 되었다.

1615년 이원익과 더불어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하다 파직되어 평산(平山)해주(海州)송화(松禾) 등지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621년 풀려나와 전감군접반사(田監軍接伴使)에 이어 체찰사 이경전(李慶全)부사(副使)가 되었으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파직당하였다.

1624년 관향사(管餉使)로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대사간대사헌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627년 가도(椵島)에 주둔한 명장(明將) 모문룡(毛文龍)접반사가 되었는데, 이때 용전(用錢)의 편리함을 깨닫고 주전(鑄錢)을 건의하였다.

1637년 절친한 사이인 좌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천거로 이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하였다.

1639년 다시 대사헌을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으나, 앞서 청나라에 인질로 보낸 왕제(王弟)와 대신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보낸 사건으로 파직되었다가 1640년 죽음과 함께 복직되었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담론을 좋아하였다.

저서로는 『설사집』이 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雪蓑集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대표명남이공(南以恭)
이공(以恭)
성명남이공(南以恭)
자안(子安)
설사(雪蓑)

명 : "이공(以恭)"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國朝編年v17南以恭被罪配海西欲因此謀奪柳朴之權使無賴人投書於海州牧使崔沂言南以恭與承宗希春畜異謀爾聸自署其名渠與以恭同事使光海之不信而欲罔人以書不出於渠也沂以爲誣告杖殺其人爾聸大怒遣宣傳官兪世曾托以烽燧摘㚥密偵其獄事
震乘總v7沂時爾瞻殺崔沂與朴承宗柳希奮爭權及南以恭被罪在海西鄭文翼以柳朴腹心居海州爾瞻使人投書海州因納一冊子曰以恭與朴柳蓄異謀文翼之名署首行而朝士多在冊中沂知其事扙杖殺告者投冊火中爾瞻大怒托以熢燧摘奸遣宣傳官兪世曾
震乘總v7救南以恭人金孝誠等七人連章請討三賊伸元翼嗾其黨請洪茂績巨濟鄭澤雷南海金孝誠珍島定配朴自興柳希奮連疏救以恭元翼爲體察時趙溭疏以恭爲從事官○幼學趙溭上疏下獄疏曰嗚呼以殿下格天之誠孝不幸遭無前之變宜不失天理之常
震乘總v7元翼爲體察時趙溭疏以恭爲從事官
震乘總v7賢相事業果如是乎然此豈完乎獨誣南以恭指嗾元翼竄配爲乎於是兩司發啓目元翼以脅君論南以恭指嗾元翼洪川付處以恭松禾定配館學儒生洪茂績等三十五人鄭澤雷等四十洪茂績鄭澤雷等疏救梧里柳希奮等疏救南以恭人金孝誠等七人連
大東彙纂v5之功今當更化之日無論彼此拔其尤者與之共謀國事未必非收拾人心之一助故臣與金瑬同席贊助始擬淸望而三臣之論以恭者亦不無執言之端蓋先輩年紀旣高閱歷已多故其論常主於寬恕後輩血氣方强名節自礪故其說常主於淸峻寬恕者或流
小華龜鑑v4字景霖號二樂堂參議○弟應雲號菊窓文武俱魁禮參孫以信以恭以雄
野乘v16及其下問或諉以道路㪽聞或推於一二外人終不實對以死自當古今天下安有爲人臣而負君護逆一至於此耶渠雖老妄因以恭軰之従臾有此㐫劄原情定罪則按問竄逐猶爲不足豈可以削黜爲請乎元翼托名大臣負大罪而将免殿下爲人君父受厚誣
野乘v17黨寔繁遂與朴承宗柳希奮争權相軋及南以㳟配海西欲因此謀奪柳朴之權使無頼人朴希一朴以彬䓁投書於海牧崔泝曰以恭與承宗希奮爾瞻畜異謀云爾瞻自署其名者渠不與以恭同事不但人所共知光海亦所洞知且欲罔人以書不出於渠也希一
野乘v17因此謀奪柳朴之權使無頼人朴希一朴以彬䓁投書於海牧崔泝曰以恭與承宗希奮爾瞻畜異謀云爾瞻自署其名者渠不與以恭同事不但人所共知光海亦所洞知且欲罔人以書不出於渠也希一䓁皆海州人也泝以為誣告不可輕處囚之矣其父兄恐禍
國朝捷錄v01冝豊以恭庶子己巳杖斃甲戌伸
郯述v03以恭從玄孫八十一
大事編年v9於是兩司發啓李元翼䝱君沽名論南以恭指嗾元翼元翼洪州付處以恭松未定配館學儒生洪茂續等三十五人鄭澤雷等四十人金孝誠等七人連章請討三賊伸元翼爾瞻嗾其黨請洪茂續澤雷孝
大事編年v9定配柳希奮疏救以恭其略曰臣忝在近屬眷渥隆洽見其當路爾瞻有甚眼釘移怒所親先試於以恭次第鉏削已迫臣身臣與以恭情義相親輔車相依臣雖愚眛與禽獸異旣見同志之酷被移乙之禍而頑然堅坐於然焰之中俛首噤口恭侯雋爛不亦悶乎
大事編年v9瞻嗾其黨請洪茂續澤雷孝誠定配柳希奮疏救以恭其略曰臣忝在近屬眷渥隆洽見其當路爾瞻有甚眼釘移怒所親先試於以恭次第鉏削已迫臣身臣與以恭情義相親輔車相依臣雖愚眛與禽獸異旣見同志之酷被移乙之禍而頑然堅坐於然焰之中俛
大事編年v9洪茂續等三十五人鄭澤雷等四十人金孝誠等七人連章請討三賊伸元翼爾瞻嗾其黨請洪茂續澤雷孝誠定配柳希奮疏救以恭其略曰臣忝在近屬眷渥隆洽見其當路爾瞻有甚眼釘移怒所親先試於以恭次第鉏削已迫臣身臣與以恭情義相親輔車相
大事編年v10五月吏判金瑬以南以恭爲憲長應敎朴炡副應敎兪伯曾校理羅萬甲等上箚以以恭嘗在昏朝有植黨市權之過請遞瑬以爲過當上亦疑其代異命炡補外爲咸平縣監兪伯曾疏田南以恭是臣連家之人也臣常
大事編年v10獨歸於朴炡罪同罰異臣實恥之大槪朴炡前後所論如趙希逸韓仁及趙纘韓金慶徵皆是朋儕間相切之人此果黨同代異乎以恭之持身不正見棄淸議上自大臣下至三司不論彼此無不同辭云云疏入留中不下伯曾持除伊川懸監萬甲補外江東縣令
大事編年v10疏田南以恭是臣連家之人也臣常鄙其爲人上年有一種議論欲以以恭通請淸顯臣不計身微言輕陳其不可於若干名宰及以恭之連入臺閣臣之所見適與朴炡相符卽陳箚而論之以恭之事臣實主張而補外之命獨歸於朴炡罪同罰異臣實恥之大槪朴
大事編年v10議論欲以以恭通請淸顯臣不計身微言輕陳其不可於若干名宰及以恭之連入臺閣臣之所見適與朴炡相符卽陳箚而論之以恭之事臣實主張而補外之命獨歸於朴炡罪同罰異臣實恥之大槪朴炡前後所論如趙希逸韓仁及趙纘韓金慶徵皆是朋儕間
大事編年v10瑬以爲過當上亦疑其代異命炡補外爲咸平縣監兪伯曾疏田南以恭是臣連家之人也臣常鄙其爲人上年有一種議論欲以以恭通請淸顯臣不計身微言輕陳其不可於若干名宰及以恭之連入臺閣臣之所見適與朴炡相符卽陳箚而論之以恭之事臣實
大事編年v10捨以恭而反救三臣者非臣所見之變於前也三臣之攻以恭非欲全棄以恭只欲不許淸望而已使朝廷遞其職斥其言而仍用以恭則以恭亦得自安而三臣者自不敢復言何必屢加摧折使一時持淸議之人皆懷不平乎自今年春後金瑬李貴兩家氣色尤不
大事編年v10而反救三臣者非臣所見之變於前也三臣之攻以恭非欲全棄以恭只欲不許淸望而已使朝廷遞其職斥其言而仍用以恭則以恭亦得自安而三臣者自不敢復言何必屢加摧折使一時持淸議之人皆懷不平乎自今年春後金瑬李貴兩家氣色尤不佳臣不
大事編年v10少輩所不容會有激之者其論遂發大生風波臣於其時捨以恭而反救三臣者非臣所見之變於前也三臣之攻以恭非欲全棄以恭只欲不許淸望而已使朝廷遞其職斥其言而仍用以恭則以恭亦得自安而三臣者自不敢復言何必屢加摧折使一時持淸議
大事編年v10擬淸望而爲年少輩所不容會有激之者其論遂發大生風波臣於其時捨以恭而反救三臣者非臣所見之變於前也三臣之攻以恭非欲全棄以恭只欲不許淸望而已使朝廷遞其職斥其言而仍用以恭則以恭亦得自安而三臣者自不敢復言何必屢加摧折
大事編年v10之共謀國事未必非收拾人心之一助故臣在詮曹欲擬淸望而爲年少輩所不容會有激之者其論遂發大生風波臣於其時捨以恭而反救三臣者非臣所見之變於前也三臣之攻以恭非欲全棄以恭只欲不許淸望而已使朝廷遞其職斥其言而仍用以恭則
國朝人物志v3宣祖庚寅進士光海己酉文科司諫以俊從兄以信字子有宣祖戊子進士庚寅文科與弟以恭聯璧號直谷官至參判以恭字子安號雪蓑庚寅文科壯元吏曹判書入耆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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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9-08雪蓑集은 현전하지 않아서 참고문헌에서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