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박종정(朴宗挺)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C15C885C815B1555X0
자(字)응선(應善)
호(號)난계(蘭溪)
생년1555(명종 10)
졸년1597(선조 30)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양(咸陽)
활동분야기타 > 처사
박인(朴訒)

[상세내용]

박종정(朴宗挺)
1555년(명종 10)∼1597년(선조 30).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응선(應善), 호는 난계(蘭溪).

부친은 해남훈도(海南訓導) 계공랑(啓功郞) 박인(朴訒)이다.

6살 때, 벽에 걸어놓은 호랑이 그림을 보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한 걸음도 뗄 수가 없구나![一物無所見 一步無得行]”라 할 정도로, 자질이 총명하고 늠름하였다. 1576년(선조 9)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21위로 합격하였다. 뜻을 더해 열심히 책을 읽었으나 타고난 체력이 약해 과거를 단념하고 양생하는데 힘썼다.

산수를 좋아하여 난계정사(蘭溪精舍)를 세웠다. 1589년(선조 22)에 기축옥사(己丑獄死)가 일어났을 때, 정철(鄭澈)의 사주를 받은 양천회(梁千會)호남의 유생을 모아 정여립(鄭汝立)이발(李潑) 형제를 모함하는 상소를 올리는데 동참해줄 것을 요구하자, 형 박천정(朴天挺)은 동참하였으나, 그는 동인(東人)이 동인을 치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이발 형제와의 친분 때문으로도 참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동지들과 적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조목조목 진달하여, 조정으로부터 장원서별제(掌苑署別諸)를 제수 받았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왜구가 호남을 침범하였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영암(靈巖)으로 가던 중 왜구와 맞닥뜨리자, 아버지를 온몸으로 감싸 안은 채 왜구의 무수한 창을 몸으로 막다가, 아버지와 함께 죽었다.

[참고문헌]

한국 역대 인물 종합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