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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李秀亨)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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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보(英甫)
도촌(桃村)
생년1435(세종 17)
졸년1528(중종 23)
시대조선 중기
본관우계(羽溪)
활동분야충효열 > 충신

[상세내용]

이수형(李秀亨)에 대하여
1435년(세종 17)∼1528년(중종 23). 조선 중기 충신. 자는 영보(英甫)이고, 호는 도촌(桃村)이다. 본관은 우계(羽溪)이고, 거주지는 경상북도 영천(榮川)이다.

조선 개국원종공신 이의(李薿)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호분위경력(虎賁衛經歷) 이만(李蔓)이고, 조부는 덕천군수(德川郡守) 이인숙(李仁淑)이며, 부친은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이경창(李景昌)이다. 외조부는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안구(安玖)이다. 부인은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의 딸 선성김씨(宣城金氏)이다.

21세 때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를 하자, 평시서령(平市署令) 관직에서 물러나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도촌(桃村)으로 내려갔는데, 낙향한 지 2년도 되기 전에 성삼문‧박팽년 등 여섯 명이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자 관란(觀瀾) 원호(元昊)‧어계(漁溪) 조려(趙旅)와 함께 치악산에 올라 단종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글을 썼다. 게다가 세조는 예전의 친분이 있음을 내세우며 관찰사를 통해 음식물을 자주 내려주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보내온 음식을 모두 거절하였다.

은거한 후에도 평생 단종을 경모하려는 마음가짐으로 공북헌(拱北軒)을 짓고 단종이 유배된 강원도 영월(寧越)을 향해 인사를 드렸으며, 단종이 죽은 후에는 상복을 입고 애도하였다.

1858년(철종 9) 승정원좌승지(承鄭院左承旨)에 추증되었으며, 고종 때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兼五衛都摠府副摠官)에 추서되었다.

묘는 경상북도 순흥(順興)에 있다.

[참고문헌]

訥隱集

[집필자]

박경이
수정일수정내역
2010-10-232010년도 국가DB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