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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군(安陽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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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항(李㤚)
시호(諡號)공회(恭懷)
생년?(미상)
졸년1505(연산군 11)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종친
귀인정씨(貴人鄭氏)
처부구수영(具壽永)

[상세내용]

안양군(安陽君)
미상∼1505년(연산군 11). 조선 초기의 종실. 이름은 이항(李㤚). 본관은 전주(全州). 성종의 셋째아들로 모친은 성종의 후궁인 귀인(貴人) 정씨(鄭氏)이다. 부인은 능천군(綾川君) 구수영(具壽永)의 딸이다.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尹氏) 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정씨엄씨(嚴氏)의 참소(讒訴)에 있다고 판단하여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봉안군(鳳安君) 이봉(李㦀: 후궁 정씨의 소생으로 성종의 6남)을 이에 연루시켰다.

연산군봉안군 이봉과 함께 생모 정씨를 때리도록 하였는데, 이봉은 자기 어머니인 줄을 알고 있었으나, 이항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릴 정도로 우둔하였다.

1504년(연산군 10)에 제천에 안치되고 가재는 적몰(籍沒)되었다. 그리고 노비전토사채(奴婢田土私債)는 추쇄(推刷)되고 처는 견성군(甄城君)에게 사여(賜與)되었으며 이봉과 함께 사사되었다.

중종이 즉위하면서 생모인 정씨에게는 삼년제물이 내려지고 이항이봉에게는 쌀‧종이‧정포(正布)‧목면 등이 내려짐과 동시에,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1520년(중종 15)에 부인의 상소에 따라 택지(擇地)하여 개장하도록 교지가 내렸다. 시호는 공회(恭懷)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大東野乘
燃藜室記述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7-20왕족인 점을 참고하여 본관을 전주로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