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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군(寧山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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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一名)이전(李恮)
시호(諡號)충희(忠僖)
생년1490(성종 21)
졸년1538(중종 33)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종친
성종(成宗)
숙용심씨(淑容沈氏)
청송심씨(靑松沈氏)
경주정씨(慶州鄭氏)
처부심순로(沈順路)

[상세내용]

영산군(寧山君)
1490년(성종 21)∼1538년(중종 33).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전(李恮).

성종(成宗)의 13남으로 모친은 숙용심씨(淑容沈氏)이다.

영산군(寧山君)은 왕자 시절부터 현명하여 성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로 인하여 여러 번 역모 혐의를 받기도 하였다.

『연려실기술』에는 영산군중종을 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산군(燕山君)이 들에서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중종에게 말하기를, “나는 흥인문(興仁門)으로 들어가고 너는 숭례문(崇禮門)으로 들어가는데, 뒤에 온 자는 마땅히 군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라고 하자 중종이 매우 두려워하니, 영산군(寧山君)은 몰래 중종에게 아뢰기를, “근심할 것 없습니다. 나의 말이 승마(乘馬)보다 매우 날랩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면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고는 진산대군(晉山大君)을 대신하여 미복(微服) 차림으로 말고삐를 잡고 좇아서 연산군보다 일찍 궐문에 도착하였다. 중종은 마침내 화를 면하게 되었다.

영산군이옹(李顒)의 옥사에 연루되어 정국공신에게 살해되었다고 하는데 『연려실기술』에는 이옹의 옥사는 중종 2년에 있었고, 영산군중종 8년에 막개(莫介)가 반역을 고발한 박영문(朴永文), 신윤무(辛允武) 등의 옥사에 관련되어 귀양갔다가 이홍간(李弘幹)이 아뢰어 석방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살해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배위는 청송심씨(靑松沈氏)군수(郡守) 증찬성사(贈贊成事) 심순로(沈順路)의 딸이다. 후취로는 경주정씨(慶州鄭氏)가 있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燃藜室記述
璿源系譜紀略

[집필자]

심량근
대표명영산군(寧山君)
봉호영산군(寧山君)

봉호 : "영산군(寧山君)"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