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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득창(任得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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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455(세조 1)
졸년1486(성종 17)
시대조선전기
본관장흥(長興)
활동분야무신 > 무신
임석명(任錫命)
광산김씨(光山金氏)
처부김자지(金自知)

[상세내용]

임득창(任得昌)
1455년(세조 1)∼1486년(성종 17). 본관은 장흥(長興).

용양위 부호군을 지낸 임석명(任錫命)의 아들로, 처 숙부인(淑夫人) 광산김씨(光山金氏)김승석(金承碩)의 5세손 김자지(金自知)의 딸이다.

1472년(성종 3)에 무과에 장원 급제하고, 1477년(성종 8)에는 평안도 도순찰사(平安道都巡察使) 허종(許琮)의 당하관(堂下官)으로 따라 갔다. 이후 1480년(성종 11)에 윤씨현비(尹氏玄妃)의 일로 주청사(奏請使)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한명회(韓明澮)와 같이 연경(燕京)에 갔을 때, 동이(東夷)라고 멸시하는 중국인을 크게 꾸짖어 이름을 알렸다. 조정(朝廷)에 돌아오자 성종(成宗)은 이를 가상히 여겨, “종사관(從事官)의 낮은 벼슬로서 능히 나라의 빛을 떨쳐 조선을 경시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칭찬하였으며, 계자를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올려서 온성부사(穩城府使)를 제수하였다. 온성도호부사로 나가서는 청렴결백하고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높았다. 1481년(성종 12)에는 무예(武藝)에서 수석하여 1자급(資級)을 더하였으며, 1486년(성종 17)에는 임금이 후원(後苑)에서 무신(武臣)의 사후(射侯)를 시험하는데, 으뜸을 차지하여 활[弓]을 하사 받았다. 1486년(성종 17)에 사망하자, 임금이 “서울에서 객사하였으므로 장사지낼 길이 없으니, 쌀과 콩 그리고 관곽(棺槨)을 부조하라.”는 전교를 내렸다.

사후(死後)에 한 시대의 명장(名將)으로 칭해졌으며, 무신(武臣) 가운데 장재(將材)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이채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